지난 호 석탑춘추를 읽고 적잖이 놀랐다. 논지가 명확하지 않고, 그 흐리멍덩한 논지의 방향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떻게 고대신문의 회계를 담당한다는 학생 간부가 ‘영수증 관리가 피곤하고 귀찮다’는 뉘앙스의 글을 쓸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돈을 다루는 절차는 당연히 복잡하다. 그렇게 엄중한 사안을 깐깐한 절차로 무장해놓지 않으면 돈이 언제 어디서 샐지 어떻게 아나. 글에선 “모든 일이 착오와 위험 요소를 포함한다”고 주장하지만, 돈 문제에서만큼은 절대 그러면 안 된다. 학교 운영비는 그렇게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글의 마지막 문장 또한 당황스럽다. “영수증 챙기기 귀찮아서 삐딱하게 보이는 것일까”라니. 삐딱하게 볼 게 따로 있다. 지면은 ‘기자들이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비용 청구를 포기해 돈을 못 받았다고 투정 부리는 공간’이 아니다. ‘법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제목도 의아하다. 글의 구조가 ‘유흥업소에서 법카를 긁은 교수에 대한 징계 처분→잘못을 막으려 규정이 늘어남→회계 담당자 본인이 영수증 챙기기 귀찮아서 삐딱하게 보이는 것’이라면 다소 참담하다. 유흥업소에서 교수들이 긁은 법카로부터 글감을 얻어, 그걸 빌미로 ‘돈을 다루는 일이 갑갑하고 번거롭다’는 식의 전개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개인의 귀찮음을 마치 복잡한 행정절차의 문제인 양 포장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고대신문 편집국의 진지한 재고를 부탁드린다.

  앞으로 넘어가서, 보도면은 주 독자층인 학부생이 가장 흥미를 가질 만한 지면일 텐데 대부분이 ‘소개·전달성’ 기사다. 출판문화원 신간 소개/사이버 고연전 전달/진리장학금 프로젝트 소개/교환학생 이야기 전달이 이어진다. 기사에 등장하는 당사자가 아니면 독자들이 애써 읽어보려 할까. 학내 소식을 전하는 보도면이니만큼 이런 기사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읽는 재미가 없을 뿐이다. 문제를 제기하거나, 합리적 비판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시선을 담은 아이템성 기획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꼭 ‘불편러’와 ‘비판주의자’가 되라는 건 아니지만, 고대신문 기자들만이 쓸 수 있는, 보도면의 정체성을 살리는 기사가 필요하다. 학교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독자를 끌어들일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제안이 ‘말은 쉽다’는 걸 안다. 그러니 더더욱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8면의 경우 건축 예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일반 독자들은 지칠 수 있는 내용인데, 글·사진 배치도 피로를 가중하는 요소였다. 조금 더 파격적인 면 구성을 시도해보면 어땠을까. 네모난 텍스트 뭉치의 압박과 더불어 직선적 사진 배치는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같은 글이라도 사진 배치에 따라 주는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 8~9면과 같이 이어지는 브리지 지면은 문화부만의 톡톡 튀는 개성을 독자들에게 뽐낼 좋은 무대이자, 놓치기엔 아쉬운 기회다.

  구태여 무언가를 읽는 행위는 의도된 지적 노력을 요하는 수고로움이다. 그 수고로움을 극복하고 지면을 읽어 내려갈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지금은 텍스트를 많이 소비하지 않는 시대다. 신문사 입장에선 감수해야 할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는’ 시대에 ‘읽을 이유가 없는’ 글을 써선 더더욱 안 된다. 고대신문 기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박형규(문과대 국문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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