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장 서사 그려내다

“영화는 질문의 답 찾아가는 과정”

한인미 감독은 "관객들이 <만인의 연인>을 통해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인미 감독의 작품 속 여성들은 진솔하다. 관심 가는 건 궁금해하고, 궁금한 일은 해 보는 적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는 한인미 감독의 영화 속 중요한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단편 영화 <토끼의 뿔>, <마침내 날이 샌다>, 웹 드라마 <대세는 백합> 등 한 감독은 여성에 주목한 작품들을 제작해오며, 독립영화계 신예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성의 욕망을 자연스레 그리고 싶었다”는 한인미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만인의 연인>은 2021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선정되었다. 때로는 용감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섬세하고 대담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한인미 감독을 만나, <만인의 연인>을 비롯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영화감독이 된 이유는

  “고등학생 때부터 막연히 영화감독을 꿈꿨는데,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이후로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저는 삶 속에서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경험한 기억을 영화 소재로 끄집어내요. 영화를 통해 현실에 서는 해결하지 못했던 상황이나 관계에 물음표를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또 제 작업물을 관객들이 얼마나 공감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재밌고요.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상황에 대한 해답을 영화 속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계속 열심히 영화를 만드는 것 같아요.”

 

- <만인의 연인>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고전영화를 보면, 소년의 첫사랑 상대가 나와요. 그 동네에서 유명한, 모두의 선망 대상인 순수한 언니로 표현되죠. 첫사랑은 대부분 순정을 바쳤던 남자 주인공을 배신하는 ‘착한 줄 알았는데 나쁜 여자애’로 그려져요. 지금껏 첫사랑은 영화에 이렇게 비쳤는데, 저나 제 친구들이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영화가 남자 주인공 입장에서 그려졌기에 많이 생략돼 있어서 그렇지, 가까이서 보면 여자 주인공이 나쁘게만 그려질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만인의 연인>은 여기서 시작한 영화예요.

  관객들은 유진이를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것 같아요. 그동안 매체 속에서 여성을 ‘나쁜 첫사랑’으로 그리기도 했죠. 자신도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으로 기억됐다는 죄책감이나 외로움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이 영화를 통해 그러한 감정을 떨쳐 버리시길 바라요. 약간의 용기도 얻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 <만인의 연인>은 어떤 이야기를 그리고 있나

  "<만인의 연인>은 18살 여고생 ‘유진’을 둘러싼 다양한 환상과의 첫 이별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가요. 엄마가 집을 떠나면서 혼자 남겨진 유진이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 눈을 뜨게 돼요. 기대와 달리 유진이는 사랑에 실패하고 꿈꿨던 환상과도 처절한 이별을 겪어요. 모든 일이 얽히고설켜 한 번에 다 어그러진다고 느끼죠. 그 이후로 유진이는 자기 자신을 보는 것에서부터 다시 관계를 시작하게 돼요. 한 소녀가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예요."

 

- <만인의 연인> 영어 제목이 <nobody's lover>던데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유진이가 외치는 말, 유진이의 선언을 의미해요. 유진이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애매하게 행동해요. 통상적으로 쓰이는 ‘만인의 연인’이라는 이미지와 일치하죠. 사실 영화를 보면, 유진이가 원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오히려 어떤 사랑도 얻지 못하게 되죠. 제목에서 ‘날 만인의 연인으로 보려면 봐라, 난 그런 게 아니니까’하는 유진이의 선언적인 말이 담기도록 의도했어요. 두 번째 의미는, 만인의 연인이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를 생각했어요. 만인의 연인이야말로 누구의 연인도 아닌 거죠. ‘누구의 사랑도 아니다’라는 뜻을 표현하고자 영어 제목을 <nobody's lover>로 지었어요.”

 

- 여성의 성장 서사를 담은 작품을 주로 제작했는데

  “<팻 걸>이나 <방랑자> 등 저는 여성 주인공의 한 시절을 보여주는 영화를 좋아해요. 그래서 이런 영화들을 한국에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취향이 작품에 영향을 준 거죠. 또 주로 감정에서 실마리를 찾아 영화 스토리를 만드는데, 제 일상에서 떠올리는 것들에 주목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 중심 서사를 구축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여성 캐릭터를 구상할 때, 저보다 더 능동적인 사람으로 그리려 노력해요. 어느 순간인가 제가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눈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인물의 성격을 구체화하는데, 영화 속 인물만큼은 나와 다른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인물을 용감하고 능동적인 여성으로 표현하고, 그들의 욕망이 눌리거나 삭제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편입니다. 선으로 평가되든 악으로 평가되든, 여성이 다채로운 면을 갖고 있고 복잡한 캐릭터라는 것을 보여주도록 앞으로도 노력할 예정입니다.”

영화 <만인의 연인> 스틸컷

 

글 | 이성현 기자 saint@

사진 | 문도경 기자 dodo@

사진제공 | 한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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