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성난 사람들
<12명의 성난 사람들>

 

별점: ★★★★★

한 줄 평: 진실을 가리는 것은 다수의 억압과 소수의 포기


  재판관은 따분한 표정을 한 채, 청문이 종료됐으니 배심원들은 퇴장해 평결을 내리라고 말한다. 배심원들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피의자 소년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평의실에 모인 배심원들은 날씨 얘기, 야구 얘기, 사건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빠르게 투표를 시작한다. 투표는 만장일치제이다. 결과는, 11명 유죄, 1명 무죄. 분위기는 싸해지고 무죄에 표를 던진 이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어떤 이는 그에게 화를 내고, 어떤 이는 이유를 묻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우리가 틀렸다면요?” 분위기가 과열되자 누군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저 신사분을 돌아가며 설득시킵시다.”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패스하는 사람, 순서를 지키지 않고 유죄는 당연하다며 화를 내는 사람 등의 말이 이어진다. 그러던 중, 흉기의 문양은 다른 곳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드니 소년의 것일 수밖에 없다고 누군가가 말하자, 무죄에 표를 던졌던 8번 배심원이 흉기와 똑같은 문양의 잭나이프를 책상에 꽂는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무심결에 다수결을 즉 민주주의로 여기곤 한다. 다수결은 불만 의사가 가장 적게 나온다는 점에서 실제로 가장 편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다수 의견에 표를 던지는 모든 이들이 이성적인 고심 끝에 최선의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논리적인 것처럼 말하던 이는 속에 다른 사적인 감정을 품고 있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근거가 완벽하지 않음에도 자신이 다수라는 소속감에 힘입어 다수는 곧 정의이자 힘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대화 자체에 무관심해 이를 빠르게 끝내기 위해 다수 의견에 표를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의 인생을 뒤바꾸는 배심원 평결은, 만장일치제이다. 

  1957년 작인 이 낡은 영화에 여전히 사람들이 감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속에서 평화롭게 대화로 진실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의 복잡하고 다양해진 수많은 사회문제로 지친 사람들에게는 이상적으로 보인다. 현실은 평의실이 아니다. 12명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70억 명이 와글거리는 세상이다. 다양하게 성내는 사람들은 영화 속보다 훨씬 더 많지만, 그들 대부분은 토론장에 있지 않다. 모두 성을 내고, 다수의 편에 서서 성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 크며, 소수의 목소리는 금방 묻혀 버리고 만다. 모든 일을 만장일치제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수결만을 고집해 소수 의견을 묵살한다면 이는 진리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는 소수가 포기하고 입을 다물어 버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 소수의 입을 막지 말 것. 둘째, 다수일 때 정의감에 취하지 말 것. 셋째, 소수일 때 포기하지 말 것.

 

김단(문과대 사학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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