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과 함께 유난히 감성이 짙어지는 시기. 평소 독서를 즐기지 않는 이도 책을 잡게 하는 마법의 계절이다. 올해는 무더위가 꺾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찬바람이 불어왔다. 잔잔하게 가을의 문을 열고 싶었는데, 빠르게 닫히는 가을에 애가 탔다. 그래도 아직은 노랗고 빨간 가로수들을 보며 더 늦기 전에 가을 책방 산책을 떠났다.

  혜화역 1번 출구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어쩌다 산책’. 늦은 저녁에도 북적이는 대학로이기에 지도를 따라 걷는데, 도착한 곳엔 책방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두리번거리자 간판 대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가 눈에 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곳에는 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고, 맞은편에는 독특한 일본식 모래 정원이 있다. 작은 숲을 옮겨 놓은듯한 이곳은 지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어쩌다 산책’은 카페와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북카페다. ‘ㄷ’자 형태의 공간에서 카운터를 중심으로 좌측은 책방, 우측은 카페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낮고 잔잔하게 흐르는 재즈와 탁 트인 통유리로 마주 보는 두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 나무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고즈넉한 인테리어는 따스한 분위기를 주고, 여유가 느껴지는 널찍한 공간은 마음의 산책을 위한 길이 된다.

  이곳은 계절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책과 시그니처 메뉴를 소개한다. 올가을의 주제는 ‘텍스트의 즐거움’이다. 서가 가운데에는 ‘텍스트를 새로이 읽는 경험’을 선사할 다섯 권의 책이 있고, 주변에는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이 둘러싸고 있다. 곳곳에 텍스트를 형상화한 다양한 오브제가 있어 들어선 순간 전시회에 온 기분이 든다.

  책을 구경하다 자리로 돌아오면 주문한 커피와 디저트가 놓여있다. 카페의 벽과 테이블 역시 서재에서 모티프를 딴 듯, 책 넣는 공간처럼 생겼다. 혼자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가벼운 수다 정도는 가능하다. 사방에서 퍼지는 나무 냄새와 커피 향이 어우러지며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책과 커피 한 잔으로 무용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다.

 

서현주 기자 z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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