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의 서재]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사회
[고대인의 서재]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사회
  • 고대신문
  • 승인 2021.11.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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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수잔 손택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미디어를 통해 국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 타인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코로나 19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 가난과 내전으로 고통받고 굶주리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 탈레반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세계 각국으로 떠돌고 있는 아프간 난민들. 그리고 여러 자선단체는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공감하고 아파하고 있는가? 타인의 고통을 염려한다는 것, 타인의 고통을 재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수전 손택의 명저 <타인의 고통>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사진과 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손택이 가진 가장 큰 문제의식은 타인의 고통을 다룬 이미지의 과잉에 있고, 이러한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게 되면 우리는 점점 타인의 불행에 무감각해지고 이들에 대한 연민이 사그라지게 될 뿐 아니라 그 고통이 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은 안타깝지만 나와 관계없는 저 먼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남의 일로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손택에 따르면 미디어가 보여주는 타인의 고통과 불행은 너무나 광범위한 나머지 우리가 돕는다고 해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무력감을 만든다. 나의 약소한 후원금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굳이 후원할 필요가 없고, 후원은 결국 후원자의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도 힘든 사람들이 많은데 왜 굳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느냐는 냉소적인 입장도 있다. 결국, 타인의 고통을 매일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무감각해지거나, 무력감을 느끼거나. 또는 타인을 돕는 행위 자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므로 결국 그 어떤 변화도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표방되는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를 하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타인의 화려한 삶과 나의 평범한 삶을 비교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 사는 이들에 대한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경쟁 사회에서는 타인의 불행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미디어의 가장 큰 효과 중 하나는 본 것을 행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타인의 고통을 보기만 한다면 불편한 감정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손택의 주장대로 이미지는 최초의 자극만을 줄 뿐 이미지 그 자체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타인이 고통받는 구조적, 역사적 이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데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손택의 입장은 명확하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성찰하는 것이 바로 지성인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박지훈(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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