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진공의 영역 ··· 국경과 이념을 초월할 수 있었죠”
“우주는 진공의 영역 ··· 국경과 이념을 초월할 수 있었죠”
  • 박다원 기자
  • 승인 2021.11.21 2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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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선 민족문학사연구소 편집위원 인터뷰

1960년대 미・소 우주개발경쟁

<금성탐험대>와 <소년우주탐험대>

남북한 초기 창작 SF작품에 영향

 

김민선 박사는 "한국전쟁 이후 민족분열과 이념 대립으로 피로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우주'를 평화적 협력이 가능한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김민선 박사는 "한국전쟁 이후 민족분열과 이념 대립으로 피로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우주'를 평화적 협력이 가능한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1957년 10월 4일, 카자흐스탄의 한 사막에서 옛 소련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화염을 내뿜으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83.6kg의 기계장치가 우주를 향해 사라지는 모습은 전 세계인들에게 지구와 우주 세계에 대한 상상에 커다란 활기를 불러왔다. 당시의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학계는 점차 우주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상상과 꿈을 부풀려 나갔다.

  남북한 문학을 연구해온 김민선 민족문학사연구소 편집위원은 “남한과 북한의 문학이 세계사적 이벤트를 두고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며 “1950, 60년대의 남북한 각각의 진영에서 창작된 과학소설들 속 나타나는 서사의 전개나 특징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말했다. 김민선 박사를 만나 우주개발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창작된 SF문학인 한낙원 작가의 <금성탐험대>와 김동섭 작가의 <소년우주탐험대-화성려행편>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 <소년우주탐험대>와 <금성탐험대>를 소개하면

  “두 작품은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남한과 북한에서 창작된 과학소설이에요. 1960년 북한에서 김동섭 작가의 <소년우주탐험대-화성려행편>이 발표됐고, 뒤이어 1962년부터 2년 가까이 남한에서 한낙원 작가의 <금성탐험대>가 연재됐죠. 둘 다 당대 발표된 다른 초기 SF작품들에 비해 완성도 있는 서사적 전개와 충실한 과학적 고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높아요. 

  먼저 <소년우주탐험대-화성려행편>에는 다양한 출신 국적의 주인공들이 등장해요. 소련과 북한, 중국을 비롯해 폴란드와 일본, 미국 국적의 소년들이 소련의 지도를 보며 화성을 여행하죠. 이들은 화성에 도착한 후 탐사하다가 화성인들이 남기고 간 영상기록물을 발견하게 돼요. 이를 통해 화성인들이 이 행성에 살고 있다가, 원료의 고갈로 집단 전체가 다른 행성으로 개척을 떠났음을 알게 되죠. 화성인의 용맹한 정신은 주인공들에게도 지구의 미래로서 우주개발의 당위를 공고히 하고 있어요. 이후 다시 지구로 돌아온 주인공들은 훗날 화성인의 궤도를 좇아 우주를 개척하는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리라는 다짐을 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돼요. 

김동섭의 <소년우주탐험대-화성려행편>(1960년작)

 

  <금성탐험대>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구도와 경쟁적 분위기가 잘 드러나요. 미국 우주 항공 학교의 구성원인 ‘고진’이라는 소년이 소련에 납치돼 소련 우주선에 승선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미군 우주비행선과 소련 우주비행선이 금성에 먼저 도달하기 위해 같이 경쟁하는 서사가 중심이며, 외계인을 만나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마침내 서로 용서하고 함께 지구로 귀환하는 등 휴머니즘도 돋보이는 과학소설이에요. <소년우주탐험대>가 우주에서 국적을 초월한 우정을 쌓아가는 것과 달리, <금성탐험대>는 금성탐사를 두고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것이 대비되죠.” 

한낙원의 <금성탐험대>(1962년작)

 

- 남북한 초기 SF문학에서 ‘우주’의 의미는

  “우주는 위와 아래가 없는, 말 그대로 체제와 국경을 완전히 초월한 진공의 영역이에요. 당대 한국전쟁 이후 민족분열과 이념 대립으로 피로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점차 ‘우주’를 평화적 협력이 가능한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공간으로 여기게 됐고 이것이 과학소설에 반영된 셈이죠. 위의 두 작품도 한쪽은 화성으로, 다른 한쪽은 금성으로 탐험을 떠나는데, 두 작품 모두 우주에서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이념대립을 해소하고 있어요. <금성탐험대>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작품 후반부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요. “지구는 하나야. 금성에 와보고 나는 그것을 알았어. 모든 민족은 적이 될 수 없어. 싸워선 안 돼, 싸워선 안 돼.” 이러한 장면을 미루어 볼 때, 지구에서는 불가능할 냉전시대의 극복이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에서만 가능했다고 해석할 수 있죠.” 

 

-두 작품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소설들이 쓰였던 당시 소련이 우주경쟁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어요. 반면 미국은 우주개발경쟁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고,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 성공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죠. 남한과 북한은 각각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을 받고 있었기에 초기 SF작품에서도 체제의 영향력이 부각됐어요. 예를 들어, 북한의 초기 작품들에는 주인공들이 소련 우주비행선을 타거나 소련인 인물이 형제나 조력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요. 남한에서는 미국이 계속해서 조력자로 등장하죠. 

  <금성탐험대>에서 소련과 미국의 경쟁적 구도가 서사의 중심축이 되는 이유도 당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던 우리나라가 우주 개발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던 미국의 상황을 의식하고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금성탐험대>에서 소련의 우주선은 미국의 기술을 베낀 것으로 묘사되고, 소련의 스파이로 등장하는 ‘니콜라이’라는 인물은 목적을 위해서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죠. 이 1960년대 초반 미국의 영향 아래에 있던 남한이 소련의 우주 기획과 성취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글 | 박다원 기자 wondaful@

사진 | 김예락 기자 emancipate@

사진제공 | 김민선 박사, 서울SF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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