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님’이 두 달 만에 또 시간대 변경을 예고했다. 새 멤버 투입 등 나름의 묘수를 두었지만, 이마저도 통하지는 않았다. 지난달 23일 방송은 전국 일일시청률이 1.9%(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까지 하락했다. ‘아는 형님 대본 유출’이라는 밈이 각종 커뮤니티에 돌아다닐 정도니, 고착화된 캐릭터와 반복되는 패턴에 지겨워진 시청자의 외면이 그 원인일 테다.

  비단 이 프로 하나만의 문제일까. 대세는 OTT라지만 그래도 가끔 TV를 틀어본다. 그런데 채널을 아무리 돌려봐도 색다른 장면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스튜디오에 앉아 입만 바삐 움직이거나, 아무개의 하루에 참견하는 식이다. 대박을 노리긴 힘들어도 보통의 흥행은 노릴 수 있는 아이템의 재탕. 그렇게 예능 시장도 비슷한 포맷을 반복하고 복제한다.

  고대신문 1936호는 ‘고대신문을 읽고’를 통해 진단을 받았었다. 인터뷰 기사의 역할은 분명하나, 이것이 신문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결코 좋은 기획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세 경우 모두, ‘게스트’ 중심 아이템에 대한 지적이다. 사건을 추적하거나 직접 참여해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저 사건에 등장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는 것은 ‘실감’을 연출하는 데 있어 역부족이다. ‘발로 뛰던’ 그 옛날의 감성과도 비교되는 지점이다.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방식의 콘텐츠가 널리 굳어진 미디어 시장 판도가 금방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른 종류의 웃음을 줘보겠다고 진흙탕에 뒹굴기라도 한다면, “출연자 보호가 부족하다”, “시대착오적이다”는 반응이 들끓을 것이다. 쉽게 불편을 표하는 대중의 태도는 제작자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두려운 요소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적당한 성공을 노릴 만한 콘텐츠를 줄곧 추구해왔던 것일까.

  그래도 가끔은 벗어나야 한다. 매번 새로운 것을 준비할 순 없지만 부진을 타파하려면 ‘품’을 들이는 정성이 마련돼야 한다. 힐난을 감수해서라도 발로 뛰고, 몸을 움직여 만드는 장면들이 필요하다. 가성비 좋은 콘텐츠만 넘쳐난다면 소비자는 귀한 시간을 내서 봤던 것을 또 보려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OTT 서비스를 넘어 ‘메타버스’ 환경을 마련하겠다고, 세상이 야단이다. 이에 대선 후보는 ‘디지털 대전환’을 약속하기도 했다. 미디어 환경에서 플랫폼의 영역은 계속해 확장되는데, 콘텐츠 구상의 시도는 제자리인 것만 같다. 기시감을 해치려면 반드시 우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 새로운 시도는 앉아 있어서만은 시작될 수가 없다.

 

정채린 미디어부장 ch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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