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취업전선에 선 그대들에게
[탁류세평] 취업전선에 선 그대들에게
  • 고대신문
  • 승인 2021.12.0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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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문과대 교수·사회학과

 

  오늘날 인류는 전례 없이 ‘개인’이 큰 사회 속에 살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부지불식 간에 인생의 주체가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반드시 훌륭한 생을 살아야 할 것 같은 과업을 떠안게 되었다. 갑자기 주어진 수많은 가능태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무언가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을 동반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지라도 본인 스스로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모르는 것은 불편하다. 덕분에 청년세대뿐만 아니라 현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는 주기적으로 사춘기를 겪는다. 다만 대학시절을 지나 사회로 나갈 학생들은 이러한 선택의 결정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음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학생들의 하소연은 지극히도 당연하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지되는 자신의 취향에 대한 비정형의 데이터는 방대하고 산만하다.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려면, 우선 스스로에 대한 데이터를 주체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일상에서 만들어내는 ‘좋아요’와 ‘싫어요’의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최소한 취향의 패턴은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다.

  때로는 거칠고 거세게 느껴지는 삶 속에서도 그대들이 내딛는 걸음이 종착점이 아님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직이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경력에 대한 기획은 징검다리의 돌을 놓는 과정과 비슷하다. 초학제적 융합적 인재를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결계를 유연하게 해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경로 이탈은 혁신적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사회학 박사 학위 취득 후, 법대와 의대로의 외유가 없었다면 필자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직업 선택을 앞둔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지극히 사적인 일화가 있다. 만 스물다섯,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6개월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한동안 떠나 있을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낮에는 국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참살이길의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했다. 연구소의 일은 익숙하고 수월했다. 레스토랑의 일은 힘들고 어려웠다.

  출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한 커플이 검은 봉지를 숨겨 들고서 레스토랑에 들어왔다. 그 커플은 칵테일 두 잔을 시켰다. 그리고는 몰래 봉지 안의 체리를 테이블 밑으로 숨겨서 먹고 있었다. 멀리서 망설이다가 다가갔다. 편하게 드셔도 된다고, 그릇에 담아드려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았다. 봉지 속 체리를 씻어서 제일 예쁜 그릇에 담아 내어드렸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의 행복한 미소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늘도 여전히 그 일화를 떠올리면 언제든 가슴 가득 따뜻함이 차오른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베푼 그 작은 친절의 순간, 필자는 본인이 매우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한 불씨 하나를 지폈다. 찰나의, 작지만 밀도 높은 그 따뜻함만 잃지 않는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면식 없는 타인에게 아주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 그토록 큰 행복감을 느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필자가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게다. 놀랍게도 필자의 약력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못했던 그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서 생의 가장 중요한 방향을 설계할 수 있었다.

  결국은 ‘어떻게’ 그 일을 하는 가가 그 직업을 귀하게 만들어준다. 지금까지 필자의 이름 앞에 붙는 직업 명사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일상을 채우는 동사에서 유의미한 경험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엇을 하든, 어떤 직함을 가지든, 함께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불씨를 지필 수 있다면, 그 길이 필자가 걷고 싶은 길이라 믿는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유레카의 순간은, 아르키메데스에게도 그러하였듯이, 참으로 소소한 일상의 순간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대단한 성취가 우리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높은 직함이 우리를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닐 터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고 조금 나은 내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가는 그 과정이 아름다울 따름이다. 어차피 답이 없는 인생이란 길을 개척하는 중이니, 유연성을 가지고 그 과정을 충만히 즐기길 응원한다.

  과분하게 감사한 직업을 가진 이의 허구에 가까운 이상주의로 읽힐 수 있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덕을 넘어온 한 사람으로, 그 터널 끝에 반드시 빛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위로와 응원을 전하는 것밖에 해줄 수 없음에,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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