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일시적인 현상일까? 십 년 전만 하더라도 K-POP의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전문가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지 않았다. 싸이의 인기는 인터넷이 만든 흥미로운 바이럴일 뿐, K-POP은 아무리 좋게 봐도 미국 팝의 B급 카피 정도라는 냉정한 분석도 있었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한국이 자랑했던, 당시 아시아권을 이미 휩쓸기 시작했던 아이돌 산업도 박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영혼이 없는, 공장에서 찍혀 나온 상품 같은 음악이며 보편성이 부족해 소수의 열광적인 팬덤 그 이상의 소구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K-POP은 진화를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팬을 끌어모으고 있다. 반짝 인기는커녕 세대를 이어 Z세대들에게도 가장 각광받는 대중음악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틱톡을 비롯한 Z세대들의 핵심적인 놀이터에는 K-POP이 배경음악으로 즐겨 활용된다. 그 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미국 팝과 비교 해도 언어적인 차이 이외에 큰 변별점을 갖지 못할 정도로 수준 자체가 많이 향상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전히 대중음악의 큰 트렌드가 미국이나 영국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이 시장의 크기나 인프라의 크기만큼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심지어 최근에는 K-POP의 영향을 받은 서구권 음악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서구의 보이밴드나 걸그룹의 비디오에는 ‘케이팝 같다’는 댓글들도 보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특정하기 어려워도 ‘K-POP 스러운’ 미학이 이미 대중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실로 중요한 변화다. 얼마 전에는 미국 대중음악 3대 음악상 중 하나로 꼽히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에서 BTS가 ‘올해의 아티스트’를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테일러 스위프트나 저스틴 비버 같은 당대의 ‘팝 아이콘’들이 독식했던 이 상이 한국 그룹의 차지가 되었다니 믿을 수 없다. 그뿐인가? 며칠 지나지 않아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상인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BTS가 2년 연속으로 ‘베스트 팝 듀오 오어 그룹’ 부문에 후보로 지명됐다.

  노미네이션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성과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에 불거진 반응이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올해 그래미 후보 지명 발표에서 가장 저평가된 아티스트 중 하나로 BTS를 꼽았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이 BTS를 시상식의 주요 부문에 지명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외신들은 이를 ‘그래미 스넙(snub)’이라 부르며 레코딩 아카데미의 보수성과 변화에 대한 게으름을 여지없이 비판했다. 

  나는 BTS의 후보 지명이나 수상 여부만큼이나 이 같은 현지에서의 논란을 의미 있는 변화 중 하나로 간주한다. BTS가 팝 부문 후보에 오른 것보다 주요 부문의 후보로 오르지 못한 것을 화제로 삼는 현실, 이것은 BTS의 현 위치를 증명해주는 부분인 동시에 달라진 K-POP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BTS 이후로 케이팝이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는 누구도 확실히 장담할 수 없다. BTS처럼 전 지구적인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룹이 단시간 내에 한국에서 또 등장하리라 예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코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시대가 변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제 미국의 주류 산업은 앞다퉈 제2의 BTS와 블랙핑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이 점하고 있던 틴 팝 산업의 일부를 ‘아웃소싱’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지 찾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K-POP 붐의 주역이 되고자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K-POP, 미국인들로 이루어진 K-POP 그룹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곧 목격할지도 모른다. K-POP의 성취가 단순히 기술적인 노하우나 정교한 공식에 의한 것이라면 그 경지는 언젠가 모방될 것이다. 우리는 이 역동적인 산업에서 K-POP에 대한 소유권과 주도권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을까. 향후 K-POP 산업의 핵심적 과제는 바로 이 부분에 놓여 있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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