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취업자 양성하려 시작

학생들에겐 취직 기회

기업엔 채용·생산성 편익

 

 

  지난 10월 여수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재학생이 안타까운 사고로 숨을 거뒀다. 현장실습 학생이 부당한 작업을 거부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잇따르자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현장실습생 작업 거부권을 포함한 새로운 조례 제정을 계획했다. 교육부는 전국 특성화고 현장실습 전수조사를 추진했고 특성화고 현장실습 폐지논의도 다시 한번 들끓었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안전사고 문제에도 현장실습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실습을 둘러싼 논의와 특성화고 학생, 교사, 현장실습 기업들이 말하는 현장실습의 현실을 살펴봤다.

 

축소·확대 반복하는 현장실습

  1963년 현장실습이 처음으로 도입될 당시 열악했던 국내 산업교육 현장에는 실업계고(특성화고의 옛 명칭) 학생들을 위한 전문적인 실습 장비가 부족했다. 이 학생들에게 현장실습은 산업체 실무교육을 이수할 기회가 됐다. 당시 산업교육진흥법에 따라 세워진 현장실습의 목적은 이론적 지식과 실기 수행능력의 통합 현장 업무수행 능력 향상 전공 관련 산업체 탐색 등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근로자가 부족한 산업체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취지로 운영됐다.

  이후 해마다 확대되던 현장실습 제도는 2005년 여수에서 엘리베이터를 점검하던 현장실습생의 추락 사고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를 계기로 2006년 교육인적자원 지원부가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현장실습은 대폭 축소됐다. 특성화고생이라 의무적으로 참여했던 파견 현장실습이 폐지되고, 수업의 3분의2 이상을 이수한 취업이 예정된 학생들에게만 조건부로 허용됐다.

  고졸 취업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특성화고의 목표 취업률을 상향 제시하며 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교를 압박했다. 취업률 목표 달성의 돌파구를 현장실습에서 찾으면서 전공과 무관한 업체에 학생들을 파견하는 학교도 늘었다. 이숙견 한국노동보건안전연구소 상임활동가는 “2010년 현장실습이 다시 확대되면서 열악한 일자리에 학생들이 내몰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2011년 광주 기아차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이 뇌출혈로 쓰러진 사건이 알려진 후에야 교육과학기술부, 고용노동부 및 중소기업청이 합동으로 현장실습 학생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 개선대책을 제시했다. 산업 현장에서 현장실습 학생과의 근로계약 체결, 노동 관계법 준수를 권고한 것이다.

 

정책 변화에도 열악한 현장 여전해

  이후 현장실습 제도의 자잘한 변화만 반복되다 2017,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교육적 취지를 살리기 위한 논의에 불이 붙었다. 그 결과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대신 학습중심 현장실습이 제시됐다. 현장실습을 취업이 아닌 취업 준비과정의 일종으로 분리한 것이다. 당시 교육부는 학생 신분에서의 취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이런 정책 변화는 취업을 목적으로 학교를 찾은 특성화고 재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실습 지도와 안전 관리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를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선정한 뒤, 선도기업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학기 중 취업이 가능하도록 조정했다. 선도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한 기업은 참여기업으로 분류해 학기가 끝난 뒤 취업이 허용됐다. 이 정책 역시 위기에 부딪혔다. 까다로운 선도기업 선정과정 탓에 기업들의 현장실습 참여가 위축되고 학생들의 사회진출 기회도 감소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교육부는 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해 2019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발표하면서 현장실습 참여기준을 완화했다.

  문재인 정부의 학습중심 실습은 산업 현장에서 작업을 통한 이론 습득과 현장실무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선 현장실습을 진행하는 기업에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만 전문 교육기관이 아닌 산업 현장에서 전문 교수인력과 유의미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출 수 있는가에 물음표가 던져진다. 이숙견 상임활동가는 대부분의 특성화고생은 중소기업으로 파견된다영세 사업장을 포함한 중소기업에 전문적인 교육 수준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교육부가 관리·감독에 앞장서 기업체를 견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노동 현실에서 특성화고의 현장실습은 안전보건과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에 학습중심의 현장실습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 현장실습 폐지 논의가 촉발됐다. 이숙견 상임활동가는 취업 알선책이 되어버린 현행 현장실습은 교육의 목적을 상실한 채 학교, 기업체, 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지되는 것뿐이라며 청년 일자리를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현장실습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현장실습, 특성화고 진학의 이유

  본래 현장실습은 두 가지의 상이한 목적을 추구한다. ‘실습을 통한 교육성공적인 노동시장으로 이행이다. ‘실습을 통한 교육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해서 현장실습을 폐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장실습을 통해 안정적으로 취업할 것을 기대하는 학교, 학생의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병욱(충남대 기계재료공학교육과) 교수는 미성년인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산업 현장에 비춰볼 때 현장실습 폐지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면서도 현장실습의 본질과 가치를 덮어둔 채 제도를 폐지해버리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안정적인 직장 마련에 현장실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성화고 졸업생 손수혁(·20) 씨는 현장실습을 별다른 문제 없이 마치면 실습 기간이 끝난 후 해당 기업에 바로 취직할 수 있다원하는 기업에 취직하는 데 현장실습 제도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오래 일할 수 있는 기업인지 판단하는 데도 현장실습이 중요하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강민성(·20)씨는 현장실습을 통해 실무뿐 아니라 직장 내 분위기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이 경험이 회사에서 계속 일할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교사들 역시 안전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장실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박상섭 특성화고 취업 전담 교사는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지 않고 졸업해 홀로 구직활동을 하는 경우, 어려움을 느끼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현장실습은 이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선택지라고 밝혔다. 특성화고 교사들은 진로 설정에도 현장실습이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취업 전 직무를 지속할지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실습 기업 업무가 적성에 맞을 경우 바로 취업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복교하여 상담을 통해 진로를 재설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주용호 특성화고 교사는 현장실습을 운영하지 않을 경우, 한번 산업체 근무를 결정하면 진로를 재설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실습은 특성화고 학생뿐 아니라 기업 입장에도 채용과 생산성의 편익을 제공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장실습으로 적성과 능력이 검증된 노동자 채용이 가능하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씨와이오토텍의 한 관계자는 올해 3명의 실습생을 받았다당장은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대부분 졸업 후 회사에 취업하기 때문에 현장실습을 통해 장기적으로 근무할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장실습생들에 대한 지원금도 기업에게는 현장실습을 지속하는 이유가 된다. 현장실습 기업에서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며 현장실습생을 교육하기 때문에 정식 채용 후 들여야 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장비 개발 업체 파인솔루션의 관계자는 실습생을 교육하는 노동자에게 실습생 수에 따라 훈련수당이 지급된다근로자 입장에서도 임금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현장실습을 폐지할 경우 현장경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구체화할 수 있는 기회와 기업의 편익을 박탈할 수 있다. 이병욱 교수는 미래의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현장실습을 포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현장실습은 외부의 폐지 요구와 내부의 존속 기대 속에 지속되고 있다.

 
글│유승하·장예림 기자 press@
인포그래픽│송원경 기자 bille@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