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사우스햄프턴대학 연구팀은 가정내 카펫의 사용이 기관지천식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나무바닥재 제조회사의 의뢰를 받은 컨설팅회사의 연구용역 결과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바람에 물의를 빛은 일이 있다. 시장논리를 앞세운 정부로부터 경쟁을 다그침 받기는 영국대학들도 마찬가지여서 유서깊은 옥스포드, 케임브리지나 신생대학들을 불문하고 기업으로부터의 연구비지원에 대학의 존립이 좌우될 형편이다.  이런 와중에 학문일반에의 기여보다는 상업적 이익에 따라 대학연구기관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의 냉정한 계산에 맞서 대학연구기관이 학문연구의 윤리를 고민할 틈이 있을까.

이제 살충제의 폐해를 고발하는 캠페인을 기획하려는 환경단체는 그 독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자문해줄 연구자들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대부분의 관련분야 대학연구기관이 살충제 제조회사들로부터 이미 연구비를 받고 있거나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과 기업의 관계는 연구비를 통해 대학연구기관과 그 소속 연구자들의 학문적 정체성을 뒤틀고 학문의 자유의 근본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

기업부설연구기관과는 달리, 대학연구기관에 의해 진행되는 연구의 신뢰성은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를 보장하는 엄격한 기준과, 연구결과발표를 통한 동료연구자들의 검증이 보장된다는데 기초하고 있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연구비를 지원한 기업의 의도와는 반대로 그 기업의 제품이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을 때 이를 발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의약, 방위산업 또는 첨단기업의 경우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가로 매우 엄격한 기밀유지를 조건으로 내세우며, 이는 불리한 연구결과를 가공하거나 아예 은폐하는 방편이 된다. 기업의 이해에 맞춤 한 연구결과를 생산하는데 실패한 경우에는 심지어 퇴출도 당할 수 있다. 런던 정경대학원의 연구팀은 중간연구보고서 결과가 불만이라는 이유로 50억 원 규모의 연구용역이 취소 당함에 따라 담당교수와 박사과정연구원들은 실직자가 되고 말았다.

대학은 일정한 윤리기준에 비추어 특정한 기업이나 특정한 과제의 연구비지원을 거부해야 할까. 기업이 교묘하게 재단이나 컨설팅 회사를 한 단계 건너 특정연구기금을 지원하는 경우도 선별해야 할까. 아무리 공공의 이익에 중대한 사실이라도 연구비를 제공한 기업에 불리하다면 연구결과의 발표를 금지하는 연구계약조건을 받아들여야 할까. 세계적 권위를 지닌 의학전문저널들은 연구자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의약회사지원 연구논문은 게재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대학연구기관 역시 상응한 윤리기준이 요구된다.

올해 6월 Missenden 고등교육개발연구원이 주최한 산학협동 - 윤리강령의 모색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제시된 윤리강령초안에 따르면 영국 대학들에게 대학연구윤리감독위원회의 설치를 권고하고 있다. 교원, 대학원생, 지역사회 대표자와 윤리학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연구윤리위원회는 대학이 신청하거나 제안 받은 연구 지원금, 기부금과 후원금에 대해 포괄적으로 심사하며, 기업과 대학의 연구계약체결에서 연구자의 연구결과발표에 대한 권리가 가장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되도록 해야 한다. 상업적 이해로 하여금 공공의 이익과 해당학문분야에 중대한 기여를 할 연구결과공개를 막도록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학연구기관의 지적재산권에 관한 방침을 마련하고, 대학자신도 연구비 또는 후원금 지원기업의 상세를 공개토록 해야 한다.

언론거대기업과 결탁하여 대학에 투자기회를 노리고 있는 다국적 거대기업들에 대한 영국대학사회 일각의 경계와 연구윤리에 대한 고심은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이다. 대학과 연구자의 이름을 값싸게 사서 학문의 이름으로 치장해서는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려 드는 기업에 맞서 학문연구의 본연을 지키려는 대학의 윤리가 대학발전기금마련에 못지 않게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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