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 5일은 한말 재상 이용악이 보전을 건학한 후 개교 50주년을 맞이한 날이다. 이 시기 본교는 새로운 50년의 대학사를 창조하는 출발점에 섰다. 이에 본교에서는 1년 전부터 기념사업을 준비해 민족사학이 걸어온 반세기를 자축했다. 예년과 달리 성대하게 치러진 기념식을 비롯해 △교가 △교표 △교기 등 이 시기에 종합대학으로 약진하는 고대의 상징 체계가 갖춰졌다.

현재 본교생이 부르고 있는 조지훈 작사·윤이상 작곡의 교가는 이 시기에 새로 제정됐다. 본교는 종합대학으로 발족한 뒤 갑자기 교가를 고치기 어려워 보성전문학교의 교가(이광수 작사·김영환 작곡)를 그대로 사용했다. 다만 후렴 부분의‘보성전문 보성전문 우리 모교 보성전문’구절에서 보성전문을 고려대학교로 고쳐 불렀다.

그러다가 당시 현상윤 총장이 새 교가 제정의 필요성을 느껴 위당 정인보 선생에게 작사를 의뢰했다. 이에 정인보 선생은 새로 교가를 지었으나 미처 그 결과를 보기도 전에 한국전쟁으로 흐지부지 됐다.
 
1920년대의 구교가의 가사는 씩씩하고 웅장해 항일 정신의 억센 힘이 느껴지지만 30년이 지난 대학의 교가로서는 걸맞지 않았다. 그래서 새 교가의 제정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러던 중 개교 50주년을 맞게되자 기념사업의 하나로 교가를 새로 제정하기로 결정했다.

유진오 총장은 이에 본교의 문리과 대학 교수인 조지훈 시인에게 각 절마다 반드시 自由·正義·眞理의 세 이념어를 넣을 것을 조건으로 작사를 의뢰했다. 자유·정의·진리는 50주년 기념을 계기로 본교의 교육이념인 교육구국의 건학정신을 더욱 적극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표방한 3대 이념이다. 인류의 공통의 이상인 인간적 自由의 실현, 사회 속에 正義의 실현, 학문 연구에서의 眞理탐구에 대한 넘치는 정열을 집약하는 현대 대학으로서 고대의 이념을 정립한 것이다.

그 당시 시를 가지고 노랫말을 작곡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윤이상 선생은 조지훈의 ‘고풍의상’을 에 곡을 붙인 것을 계기로 조지훈 선생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조지훈 선생의 추천으로 당시 유망한 신인 작곡가 윤이상에게 교가의 작곡을 부탁했다.

윤이상 선생의 작곡이 교가로 완성되기까지 에피소드도 있다. 그 당시 조지훈 선생의 추천을 받은 윤이상  선생은 교가 작곡 의뢰를 받고 두개의 교가를 만들었다. 그 두 개의 교가 중 더 나은 것으로 채택하기 위해 총장과 학과장들이 모인 총장실에서 교가를 연주했다. 그때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분들이 교가가 꺾이는 힘이 약하다며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좀 더 행진곡풍으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이 시기 무명이었던 윤이상 선생은 그들의 충고를 귀담아 들었고 세 번의 수정 끝에 현재의 교가가 완성됐다. 그 당시 윤이상 선생을 인터뷰했던 신재근 교우는 “39살이라는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젊은 나이였기에 열성을 다해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두 세번의 수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명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가는 기념일을 기하여 신교가로 제정하는 동시에 작곡가 윤이상으로 하여금 직접 지휘해 재학생 전원에게 이를 가르쳤으며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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