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가는 노래의 형식을 빌려 학교를 상징한다. 따라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학교의 교육 목표나 건학정신, 교풍, 지역의 정서 등이 내포돼 있다. 교육활동의 일부인 교가는 졸업식과 같은 학교 행사나 의식 때 부른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애교심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학생들의 장래에 마음의 양식으로 삼는 긍지를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

구교가는 1922년 4월 전문학교로 새 출발을 했을 시기에 만들어졌다. 작사는 그 당시 동아일보엶민족개조론’을 쓴 춘원 이광수에게 맡겨졌다. 춘원은 상해에서 1921년에 귀국해 이듬해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된다. 이즈음 본교는 문장에 대한 명성이 높고, 동아일보사가를 작사한 이광수에게 보전교가의 작사를 요청한 것이다.

 작곡 역시 홍난파의 뒤를 이어 한국음악계에서 활동한 음악인 김영환에게 의뢰했다. 그는 동경 음악학교를 졸업한 당시 음악계의 거인이었으며 한국 양악계(洋樂界)의 선구자였다.
구 교가에서는 젊은 힘과 생명의 예찬, 진리와 정의로 일관돼 있는 젊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아무리 앞을 가로막는 굽은 것이라 할지라도 혹은 불의와 부정이 있어도 헤치고 나아갈 전진의 기상이 넘쳐흐른다.“소리치고 일어나자 보전건아여”에서 10년 전 춘원이 독립선언을 기초했던 젊은 애국혼이 다시 살아, 교가 속에서 메아리 친다.

이 교가는“젊은 생명을 펼 곳이 눌린 자를 쳐들기에 굽은 것 펴기엽라는 구절을 넣어 당시 침략하에 억눌린 민족의 광복과 불의·부정에 대한 정의의 용기있는 투쟁을 고취하는 생명감이 있으며 저항적 민족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구교가는 개교 50주년을 맞아 인류성을 가진 대학 휴머니즘의 보편성과 민족사학의 민족성을 조화시킨 현대적 이념을 부각시키기 위해 신교가로 변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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