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정신 없이 한 주간의 수업을 마치고 쉬고 있는 나에게 SAM 학교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존 목사님이 5월 23일이 공휴일이라고 알려줬다. 휴일에는 SAM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가나인들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존 목사님은 5월 23일은 AFRICA DAY 라며 이것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오셨다.

AFRICA DAY는 아프리카 대륙의 견고한 연대를 바라며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정한 공휴일이다. 이를 위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행사들을 갖는데, 가나에서도 아크라에 있는 국립극장을 빌려 큰 행사를 여는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지겹도록 가나인들의 단결을 강조하는 그들이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통합을 위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졌다. 그렇게 나는 이번 화요일, 대규모 AFRICA DAY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크라로 향하게 되었다.

이 날의 행사를 주관한 단체는 아프리카와 미국에 본부를 둔 대규모 국제 NGO였다. 민족간, 나라간의 격차를 줄이고 전 세계적인 연대를 구축하자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주요 슬로건이었다.

연사들은 아프리카 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거론하며, 질병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들 자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연사들은 ‘우리 흑인’들을 강조하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고는, 이제 우리도 변해야 한다고, 함께 어두웠던 과거를 벗고 세계의 중심에 서자고 열변을 토했다. 그들을 향해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로 화답하는 관중들을 보며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부를 향한 적대감이 클수록 내부의 결속력이 견고해 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뿌리깊은 인종차별의 역사 속에서 흑인들이 받은 상처와 이로 인한 피해 의식이나 백인에 대한 적대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고민들이 민족주의에 대한 강조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마다 당황스럽다. 그들에게 있어 국가와 민족의식에 대한 강조는 거의 모든 아프리카 대륙 문제들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가나인들에게도 그들의 고향을 물어보면 항상 그들은 자신의 부족을 함께 소개하곤 한다. 각 부족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고, 그런 만큼 아프리카에는 나라보다는 부족의 개념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국주의 열강들은 마음대로 아프리카 나라들을 나눠 놓았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나라와 영토의 경계선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들은 다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돌아가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들 자신이 왜곡된 민족주의로 무장한 식민지 제국주의의 가장 큰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그토록 국가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가.

이런 나의 질문에 그 행사에 동행했던 존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지적이 맞다고, 민족주의는 왜곡되기 쉬운 이념임에 틀림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지금 너무나 절대적인 빈곤 상태에 있기에, 우리에겐 먼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날 성장의 동력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SAM 학교를 운영하시는 선교사님이 이번에 학교를 확장하면서 한국인을 부른 것은, 같은 민족이기에 더 쉽게 소통하며 일할 수 있기 때문 아니었겠냐 반문했다. 우리에게 단결은 그런 것이라고, 가난과 내전, 수많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라 내부의 단결, 아프리카 대륙의 단결을 강조하는 그 분 앞에서 더 이상 민족주의는 극복돼야 할 대상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AFRICA Will Rise Again을 외치며 식을 끝내는 그들을 보며 나는 다시금 혼란스러워졌다. 어떤 가치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가. 그들에게 근대화는 무엇인가. 인간 존재,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체제나 이념이 존재할 수 있는가. AFRICA DAY 행사, 그 끝자락에서 몇 안 되는 외국인 참석자 중 하나였던 나는 이렇게 또 한 차례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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