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은 러시아인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산 역사의 날이다. 이 날은 바로 승전의 날로서, 그 참혹했던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넋과, 2차 대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날은 성스로운 애도의 날이며, 동시에 온 러시아가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환희의 날이기도 하다.


자식을 잃은 노부모들, 전쟁 고아들, 폐허가 된 도시, 기아, 추위... 한마디로, 당시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 희생을 당하지 않은 가정이 하나도 없었다. 이 날이 전 러시아인의 가슴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기념일이 된 것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그 날을 생각하면 그 어떤 러시아인이라도 역사앞에 숙연해지고, 소름끼치는 파시스트들를 증오하며, 다시는 인류역사에 그런 오류가 반복되지 않기를 깊이 다짐하곤 한다.

시간의 흐름과 역사 변화의 상관고리는 불가분의 관계인가? 철의 장막이었던 소비에트가 붕괴되었고, 어느새 사회 내에는 과거 억눌렸던 자유가 만연해 있다. 갑작스레 얻게된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심지어는 부담스러워 하는 러시아인들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정말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최근 들어 러시아내에 과거의 악령이었던, 그것과 투쟁해야했던 파시즘이 교묘하게 그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킨헤드들이 그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머리를 삭발하고, 켈트 십자가 문양을 새긴 검은 가죽잠바와 군화를 신고 다니며 사람이 밀집한 거리나 지하철, 그리고 외국인이 자주 다니는 곳을 노려 그들을 집단으로 구타하거나 심지어는 살해하기도 한다. 작년 모스끄바 짜리찐스끼 시장에서 있었던 카프카즈 상인들 구타와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을 부순것도 다 이들의 짓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색인종들 특히, 한국 (심지어 이곳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재러교포인 고려인들도 포함된다) 중국, 일본,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의 피해 사례가 최근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모스끄바나 뻬쩨르부르그에서 유학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심각한 긴장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스끄바에서는 시내나 지하철에서 구타를 당한 한국 유학생들이 부지기수로 많아 지하철을 이용하는 유학생은 거의 없으며 모두들 신변 안전을 위해 비싸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택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한다.
 
공식적인 스킨헤드 조직인 나로드나야 나찌오날나야 빠르찌야(NNP-인민 민족당)의 당수인 알렉산드르 꾸즈미치 이바노프-수하례프스끼는 스킨헤드의 행동을 자연스러운 러시아 젊은이들의 저항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러시아 땅에 들어와 시장을 장악하고 마약거래을 일삼으며, 또한 러시아 여인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매춘부로 만들었다. 그들은 러시아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퇴폐시키고, 주인인 우리의 물과 공기를 마시며, 우리의 땅을 밟고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한 아무런 댓가도 지불하고 있지 않다. 이들은 게걸스럽게 쳐먹어대기만 하는 쥐새끼들이다. 쥐새끼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그는 스킨헤드의 행태를 정당화하고 있다. 같은 러시아 민족이면서 러시아 정교를 믿는 러시아인이라 할지라도, 마약 중독자, 동성 연애자, 변태 성욕자등등 "인간 쓰레기"들(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역시 외국인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모스끄바에만 이런 스킨헤드들이 약 1500명 정도가 있다. 이들의 평균 연령대는 주로 17-18세로, 학교, 축구 경기장, 혹은 스킨헤드들이 주로 모이는 록 콘서트장에서 친분을 갖고 어울리게 된다. 따라서 그 수는 젊은이들 사이에 증가추세에 있으며, 그들의 영향이 미치는 지역도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외국인들의 피해 사례가 많아 짐에 따라 지하철역마다 경찰들을 배치하고 외국인 기숙사와 학교에 특별 경비를 세우는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아직 국가의 치안 상황이 전반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유학생들에겐 긴장의 끈을 풀수 없는 현실이다.
 
러시아에 신파시스트, 스킨헤드 등장이 외국 자본에 의한 경제 구조의 왜곡과, 그 결과 생긴 사회적 모순속에서 초래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인간적 심정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단지 현실의 불만에 대한 표출로서 아무 이유없이 외국인들을 구타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하는 극단적 행태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범죄 행위이며, 또한 인종 차별에 다름 아니다. 참혹했던 전쟁속에서 전선에 나아가 조국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파시스트와 맞서 투쟁한 앞세대의 이상 속에서 미래를 짊어질 러시아 젊은이들은 현실의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5월 9일 승전의 날, 스킨헤드, 러시아... 필자의 귓가에 쮸쳅의 유명한 싯귀가 울려 퍼진다.

"...우멈 라씨유 니 빠냐찌(머리로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다)..."

문경남(러시아 통신원)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