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와 연세대학교 간의 첫 대결은 지난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의 고?연전 같은 정기대항전은 아니지만 1927년 조선체육회 주최 ‘제 8회 전조선축구대회 청년부 준결승전’에서 보성전문학교(이하, 보전)와 연희전문학교(이하, 연전)는 역사적 첫 대결을 시작한다. 이 경기는 경성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 현재는 주차장으로 사용)에서 열렸고, 학생들은 동원된 악대와 함께 337 박수를 치며 단체응원을 펼쳤다. 결과는 0:3으로 보전이 연전에 패했다. 그 후, 1930년 11월 10일 조선전문학교연맹주최 ‘제5회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연전과 대결, 3:1로 승리하기까지 보전은 연전축구부에 계속된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양교는 1942년까지 28차의 조선축구 정상을 겨루는 접전을 벌였고 14승 14패의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3년 후, 1930년 9월 17일 YMCA 주최 ‘제2회 전조선 전문학교 농구선수권대회’에서 첫 보?연 농구전이 서울시민의 관심 속에 열린다. 결과는 연전이 28:36로 우승했다. 연전 농구 팀은 중등농구의 명수들만으로 구성돼 봄, 여름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왔다. 하지만 보전 농구 팀은 농구는 그저 취미 생활 정도로만 알던 축구부원들이 주력멤버였기 때문에 연전이 보전을 꺾은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패전을 분하게 여긴 보전 팀은 이듬해 입학기에 활발한 스카우트 공세로 강력한 팀을 구성, 1931년 5월 30일 조선농구협회 주최 ‘제1회 일반구락부 리그전’에서 연전을 23:19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42년까지 양교 농구는 56차례나 맞붙어 28승 28패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백중세를 기록했다.

보통 승부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양교는 체육대결에서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나 무조건 패배를 허용하지 않았다.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가 되고, 다시 오늘의 패자는 내일의 승자가 돼 밀고 밀리는 숨 막히는 우열 다툼을 장장 15년이나 계속했다.
해가 거듭되는 동안 양교의 대결은 장안의 흥미와 관심의 대상으로 서서히 떠올랐고, 양교의 학생?학교 당국도 차츰 이 대전의 긴장과 흥분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승부의 열정에 애교심과 모교애가 더해져 양교 학생은 물론, 졸업생들까지 이 한 판에 관심을 가졌다. 보?연전의 승부는 실력만으로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투지와 불굴의 정신력으로 우열을 가리는 예측불허의 대회전이 된 것이다.

이에 발맞춰 양교의 응원전도 치열해 졌다. 보전은 꽹과리, 장구, 날라리 등 민족 고유의 악기를 총동원해, 치고 두드리고 불어대면서 교가와 응원가를 불렀다. “우하하 헛다리 통방울, 또또또 구렀다 콩고물, 그러면 그러치 아무렴 그러치, 어쩐말이야 젖먹고 와” 라는 <보전 응원의 노래>는 산이라도 무너뜨릴 기세로 울려 퍼졌다. 또한 “높은 이상 넓은 도량 민활한 기술…/ 대지우에 스포-쓰 레코드를 그으린 자… 오늘날도 이겼다네. 보성전문군/ 영원토록 승리가질 이 나라 용사”가 온 경기장을 흔들었다. 경기 후에는 도라지, 아리랑 등 흥겨운 민속노래에 맞춰 승전고를 울리며 귀교 시가행진을 벌였다.

<동아일보>에 사진으로 소개된 응원 광경에는 교모와 교복을 착용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온갖 색깔의 테이프를 응원석에 늘어놓고 곽지로 만든 긴 나팔을 저마다 들고 함성을 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연전 또한 양악대를 앞세워 서구 취향의 세련미를 뽐내며 개선행진을 벌였다. 경기가 열린 밤, 장안의 막걸리는 동이 났고 양교 학생들은 젊음의 뜨거운 정열을 한껏 발산했다.

이처럼 양교를 숙명적으로 한 고리에 묶어 선의의 경쟁과 대결을 불가피하게 만든 힘은 바로 민족애였다. 민족 수난기에 두 학교는 억세게 자라났고 그 중 하나는 민중적 자세로 민족을 사랑했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민족에의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이 현상은 학생들의 기질 속에서도 한쪽이 서민적이고 민족적이어서 거친 반면, 한쪽은 서구적이면서 세련되고 민첩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서로 대조를 이뤘다.

선의의 경쟁과 우정 어린 승부, 그리고 때론 젊음을 주체 못한 나머지 지나친 승부의식으로 사소한 마찰을 유발하기도 했던 보?연전, 고?연전은 이렇게 시작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양교는 선의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상호 경쟁적, 협조적, 친선관계를 유지하면서 스포츠 발전 뿐 아니라 학교의 발전과 전통을 이어 왔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