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전문학교(이하 보전)시기 만들어졌던 운동부들은 일제시대 저항적 ? 민족적 표현의 장이었다. 지금은 그 명맥이 끊겼지만, 그 당시 운동을 통해 민족의식 고취와 육체단련에 힘쓴 보전운동부로는 정구부, 탁구부와 육상부가 있다.

일제시기 우리나라에 가장 일찍 수입된 경기 중 하나는 정구였다. 이후 1921년 보전에 정구부가 창설됐으나 초기에는 대회에서 하위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1933년경부터 기량이 향상돼 1940년대 국내 패권을 잡기에 이른다. 1920년 당시 일본인들에게 정구부는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정구부가 보전에 최초의 운동부로 창설된 후, 좋은 기량을 보이면서 민족적인 저항의지를 담은 경기로 자리잡게 됐다.

19세기말 영국에서 시작된 탁구는 1918년경부터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경기이다. 이후 1935년 고양진 교우의 입학과 함께 보전에 탁구부가 창설되게 된다. 그러나 창립당시 학교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시합에 출전하면 식비를 보조하고 소모품(탁구라켓과 공)을 지원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탁구부는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량을 펼친다. ‘제16회 전조선탁구대회’에서는 보전탁구부가 전승 우승의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탁구부의 이러한 전통은 1941년 일본이 제1차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막을 내린다.

육상부는 1920년에 1922년부터 영어강사로 3년간 재직한 여운홍에 의해 창설지만 아쉽게도 현재 육상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소사는 알 수가 없다.
현재 그 명맥을 이어가거나 그러지 못한 운동부가 있지만 보전 운동부들은 일제시대부터 민족 억압에 대한 대변자로 활약하며 현재 우리나라 운동계의 기틀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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