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초고속 인터넷 망에 연결되어 있을 것. 둘째, 최신 사양의 컴퓨터를 사용할 것. 셋째,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판매하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프로그램을 사용할 것. 넷째, 한국 내에서 접속할 것.  이상의 조건이 모두 구비되면 본교의 웹사이트(www.korea.ac.kr)와 포탈사이트(portal.korea.ac.kr)에 접속하여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작업을 하는데 별 불편이 없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순간 본교의 인터넷 사이트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거나, 사용자에게 초인적인 인내심을 요구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 댁에는 한물 간 펜티엄 1세대 프로세서와 64Mb 의 램메모리를 장착한 컴퓨터가 있다. 그러나 윈도우즈98 운영체계를 가동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고, 초고속 인터넷 망에 연결되어 있어 다양한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본교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호랑이 로고가 나타나는 데에만 1분 가까이 걸리고, ‘수험생 | 고대인 | 일반인’이라는 제목은 마치 누군가가 화면 저쪽에서 어설프게 타자를 직접 치는 것 같은 속도로 나타난다.

‘GO 서창캠퍼스, 도서관, 박물관, 의료원’은 더욱더 유유자적, 사용자의 인내심 테스트라도 하듯이 순서대로 꾸물꾸물 등장한다. 부모님의 컴퓨터가 본교의 상징색인 적포도주 빛 사각버튼(‘고대정보, 온라인서비스, 커뮤니티, 웹진’)을 하나씩, 하나씩 힘겹게 ‘생산’하고 있을 때쯤이면 난데없이 등장하는 두개의 ‘팝업’ 창들이 마치 가리개 마냥 화면 왼쪽 부분을 가린다(팝업창들은 한참동안 멍하니 백지 상태로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가리개’라고 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화면 오른쪽을 보게 되는데, 아까부터 어쩐지 휑하니 비어있던 오른쪽 하단 공간이 형체를 잘 식별하기 어려운 이상한 조각그림으로 서서히 채워진다. 이 단계에 오면 부모님의 컴퓨터는 드디어 ‘갤 갤 갤 ...’하는 단말마적 기계음을 내기 시작한다. 램메모리가 소진되고 swap memory까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검색창에 글자를 치는 일은 사실상 단념해야 한다.

부모님의 구형 컴퓨터를 탓해야 할까? 같은 컴퓨터로 스탠포드대학의 웹사이트에 접속해 본다(www.stanford.edu). 단 몇 초 만에 웹사이트가 완전히 열리고 필요한 정보를 당장 찾기 시작할 수 있다. 예일대(www.yale.edu), 코넬대(www.cornell.edu), 컬럼비아대(www.columbia.edu) 등도 마찬가지이다. ‘팝업’창도 없고, 움직이는 그림도 없다. 왔다 갔다 하는 글자도 없다. 그러나 정작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당장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 참, 하바드대학도 마찬가지다(www.harvard.edu).

영국의 캠브리지대학(www.cam.ac.uk), 옥스포드대학(www.ox.ac.uk)의 웹페이지도 가본다. 미국보다는 3, 4초가량 더 걸리지만 역시 단숨에 웹사이트가 확 열린다. 마우스를 갖다대어야 비로소 슬그머니 속 메뉴를 펼쳐 보여주는 그런 이상한 버튼은 없다. 대부분의 방문자가 필요로 하는 메뉴들을 굳이 ‘고대정보’라는 기이한 제목의 버튼 속에 꼭꼭 숨겨 놓아야 할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고대 웹페이지를 방문하는 자가 ‘고대정보’ 외에 도대체 무엇을 원한다는 것인지?  나머지 버튼 속에 숨겨져 있는 메뉴들은 고대정보가 아니고 연대정보라도 된단 말인지? 학교 사진이 왜 꼭 움직여야 하는지?  사진속의 글자가 왜 뒤죽박죽 섞여서 끝없이 허공을 떠돌아야 하는지? 본교의 웹페이지는 필요한 정보를 신속, 간편히 제공한다는 목표를 지향하지도, 달성하지도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Macromedia 회사가 개발한 Flash 애니매이션을 사용하면 그림이 움직이고 글자가 오락가락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열광하여 이를 선전하는데 골몰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java script를 어느 정도, 어떤 식으로 사용하면 저 용량 구형 컴퓨터를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곱게 봐 줄 수 없다.  그리고 방문할 때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반복하여 떠오르는 ‘팝업’창은 거의 절망적이다. 

대학교의 웹사이트에는 ‘팝업’창이 없는 것이 제일 좋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굳이 그것을 꼭 띄워야만 한다면, 같은 컴퓨터에서 반복 접속하는 경우에는 최초 한번이면 족하지 않을까? 도대체 cookie를 제대로 사용하기는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다 먹어치우는 건지? 

더욱 심각한 문제는 다른데 있다. 본교의 웹페이지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이외의 웹브라우저(web browser)로는 접속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매우 불완전 하다.  유닉스 또는 리눅스 운영체계에서 아직도 활발히 사용되는 lynx라는 웹브라우저가 있다(lynx.isc.org). Lynx는 그림, 동영상, frame, java script 등은 처리하지 못하지만, 글자로 된 정보를 검색하는 데에는 그야말로 ‘번개 같이’ 빠르다. 자연과학, 공학 등 본격적인 전산 업무를 추진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자들은 익히 알고 있고,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교의 웹페이지는 lynx로는 접속 불가능하다. 유닉스, 리눅스 환경에서 사용되는 Dillo 라는 매우 깜찍한 브라우저도 있다(www.dillo.org). 마찬가지로 본교 웹사이트는 접속이 불가능하다.  윈도우즈, 매킨토시, 유닉스, 리눅스 환경에서 모두 실시 가능한 Netscape 와 Opera 라는 인터넷 프로그램은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사용인구가 결코 적지 않다.  본교 웹사이트는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미국과 영국의 유명 대학 웹사이트는 이 모든 웹브라우저로 접속이 가능하며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얻는데 아무 불편이 없다. 웹페이지의 소스파일을 작성할 때 국제적으로 통용, 권장되는 html 4.01 specification (http://www.w3.org/TR/REC-html40)을 제대로 지켰으면 브라우저 간의 호환성이 확보될 수 있었을 것이다. Global KU의 얼굴 격인 본교의 웹사이트가 오로지 한국의 ‘상업성’ 웹페이지에서나 주로 통용되는 프로그램 관행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엄청난 처리 용량을 요구하고 (따라서 매우 느리고), 정작 필요한 정보를 제공 하는 데에는 소홀하기 그지없는 본교의 웹페이지일망정 비상한 인내심으로 끝까지 버티면 외국에서도 접속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교의 포탈사이트(portal.korea.ac.kr)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미국 내에서는 기술적으로 아예 접속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 email을 미국에서는 열어볼 수 없고, 성적처리나 수강신청 등도 불가능하다. 포탈 사이트 초기화면은 뜨지만, 로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는 사용자는 login 버튼을 눌러놓고 Global Pride! 라는 글자만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결국은 ‘중지’버튼을 누르고 나올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교환학생으로 또는 연구년을 보내기 위하여 미국에 머물고 있는 고대인들은 어쩌란 말인지? 

기술적 이유는 아마도 학교의 포탈사이트 보안 프로그램이 128bit encryption을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국방, 안보상의 이유로 64bit encryption 이상의 보안 프로그램은 법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컴퓨터 보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지만 본교 포탈 사이트처럼 무작정 높은 단위의 encryption을 쓰는 것만이 최선책은 아닐 것이다.

정작 본교 전산시설의 보안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대부분의 학과와 행정부서에 설치되어 있는 거의 모든 컴퓨터는 사용자계정을 통하여 통제되지 아니하고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전산시설 관리체계는 그야말로 상식 밖의 일이다.  누군가 학교 컴퓨터를 사용하여 외국의 전산망에 대한 해킹 시도하였다고 하자.  한국 내 전산망에 대한 공격이라면 그 피해자에게 학교 컴퓨터가 마구잡이로 대중에 공개되어 있다는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외부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노라고, 양해를 구할 수도 있겠지만, 외국의 피해자가 그런 설명을 듣는다고 생각해보라.

인터넷 천국은커녕 전산 지옥이라 불리어도 마땅하지 않을까?  그리고 본교가 운영하는 파일 서버(ftp://www.korea.ac.kr)는 사용자 계정으로 통제되고 있긴 하지만, 단순한 ftp 프로토콜을 사용하기 때문에 본교의 네트워크에 물리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자라면 누구라도 엿보기 프로그램(network sniffer; 수십 종의 프로그램이 있으며 누구든지 인터넷에서 무료로 내려받아 설치 할 수 있다)을 실행하여 접속자의 id와 비밀번호를 그대로 포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 다른 파일서버인 ftp.korea.ac.kr 은 ip 주소를 통한 접근 제한만을 하고 있을 뿐(학교 밖의 컴퓨터에서는 접속 불가, 학교 내의 컴퓨터에서는 아무나 접속 가능), 사용자 계정을 통한 통제마저 없다.

본교 웹사이트와 컴퓨터 시설의 문제점들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열심히 노력하는 학교의 전산담당 부서의 직원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심각히 잘못된 이해이다. 웹사이트를 실제로 제작한 업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학교의 웹사이트가 추구하여야할 구체적인 목표, 학교 웹사이트가 제공하여야 하는 정보가 어떤 구조로 어떤 스타일로 제시되어야 하며, 어떠한 사용자 층의 수요와 전산환경에 적합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방향설정이 전혀 없이 웹페이지 제작주문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저 막연하게 ‘잘 만들어 달라’는 주문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이다. 오늘날 인터넷과 전산망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우리 학교의 웹사이트가 초보적인 정보전달의 기능마저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면서 그저 ‘팝업’창과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도배되다시피 되어 있는 점, 오로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프로그램에만 목을 매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학교의 거의 모든 컴퓨터가 제약 없이 마구잡이로 아무에게나 개방되어 있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본교 전체 구성원들의 정보문화에 대한 미개함과 무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우리 모두가 가장 먼저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에서 www.korea.ac.kr에 접속을 시도하려다 결국 포기하고 마는 사용자가 수십, 수백 명은 될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김기창(법과대 교수)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