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러시아제 수동 카메라 ‘제니트’를 한 대 산 적이 있다. 모델은 조잡하지만 광학기술은 일제 카메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주위의 말을 들었고, 값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서 장만한 것이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모든 공산품들, 자동차, 그리고 심지어 건축양식도 디자인이나 데코레이션보다는 오히려 그 기능적인 면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다. 이는 실리적인 것 이상의 모든 것은 사치와 남용으로 이해되었던 소비에트 미학의 한 반영이라 생각된다. 그 결과 투박하고 조잡해 보이는 러시아 제품들은 디자인이나 인테리어가 더 부각된 외제품에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하튼, 필자는 이 기사를 통해 그런 소비에트식 기능주의에 대해서 논하고 싶다기 보다는, 작은 일화를 통해 러시아 사회에 존재하는 고질적인 비효율성에 대해 지적해 보고자 한다.

얼마 전부터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수리를 해보려고 여기 저기 돌아 다녀 보았지만 수리를 할 만 한 곳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구하기 어려웠다. 한 수리점에 가 보았더니 외제 카메라만 취급한다고 했고, 다른 곳에 가 보았더니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며 수리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 후 지쳐서 거의 포기 상태에 있는데, 아는 러시아 친구 꼴랴를 통해 고쳐볼 만한 수리점을 우연히 알아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카메라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어렵게 물어 갔는데, 이미 마스쩨르-장인(匠人)-가 퇴근했다고 다음 날 오라고 했다. 아직 근무 시간표에는 그가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일찍 버스를 타고 그 곳으로 다시 향했다. 혹시나 마스쩨르가 또 ‘제 때’에 퇴근하고 없을 걸 대비해서. 공장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서있는 경비가 나를 저지했다. 통행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앞에 구내 전화로 그 회사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직원 왈, 그곳에선 수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주소를 주면서 그곳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짜증이 났지만, 하루 버렸다 셈치고 할 수 없이 다시 버스를 탔다. 그러나 이번엔 점심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시부터 2시까지 점심 시간이었는데, 내가 도착한 시간은 1시 5분전이었다. 다행이다 싶어 들어가려는 나를 한 여자가 내쫓고 문을 잠근 뒤 한시간 후에 오라고 했다. 따져 보았지만 들으려하지 않았다. 1시간을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1시간을 기다려 그곳에서 카메라를 고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문제는 아주 간단했다. 렌즈 안쪽 나사가 풀렸는데 그것만 약간 조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누구나 러시아에 한 번쯤 와 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불편함을 겪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겪은 건 그것들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러시아에 오래 있으면서 한 두 번 당하는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그들의 정체성이 답답하기만 하다. 정보 사회라고 하는 21세기에 정보의 통로가 막혀있고, 대부분의 일 처리가 사용자보다는 당사자들 위주로 되어 있는 업무구조로 인해 러시아인들로부터 고객에 대한 친절이나 서비스를 좀처럼 기대하기 어렵다. 그건 우리의 지나친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를 지향하는 러시아 사회에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망과 고객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의식이 갖춰지고, 아울러 그에 상응하는 방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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