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신용카드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각종 범죄와 사건 이야기를 매스컴을 통해 심심치않게 접하고 있다.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어쨌거나, 자신의 신용을 지키려고 악착같이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려니 하고 대충 넘어가도 되겠지만, 대부분의 성인들의 지갑 한쪽에 있는 그 조그마한 플라스틱 네모조각이 이 사회에 가져다주는 여파는 실로 대단하긴 하다.

의복과 화장품의 광고모델이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21세기 한국의 광고 시장의 최고 인기모델은 카드회사 광고에 등장한다. 남녀 인기 탤런트와 영화배우는 물론이고 국가대표팀의 외국인 지도자, 해외에서 활약하는 프로스포츠 선수 등이 감히 상상하지 못할 금액의 출연료를 받으며 광고에 출연중이다.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카드 회사의 영상 광고의 구성요소들은 소비대중들을 유혹하고 유인하는 일종의 후림오리(decoyduck)들을 세련되게 배치해 놓았다.
 
하긴 인간들은 옛날 옛적 사냥으로 먹고 살 때부터 그러한 미끼들을 사용해왔으니 자본주의 시대에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교묘하면서도 대담하다. 최근 L카드사의 광고는, 능력이 되면 쓰고 아니면 쓰지 말아달라는 계몽성 발언까지 담아내는 순발력까지 보이고 있지 않은가.

인류가 그 동안 만들었던 미끼 역할의 시각 이미지들은 다양하게 변모되어 왔다. 죽은 동물의 고기에서 사람 모양의 모형으로,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영상 등으로 발전되어 온 흔적들은 마치 ‘지각의 속임술’의 역사를 쓰는 것 같다. 물론 인위적인 시각적 코드의 유형으로 자리 잡기까지 그 속임수들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왔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적으로 누군가를 속이려면, 속이는 자와 속는 자들이 서로 다른 인식 반경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 인간은 강아지나 고양이는 쉽게 속일 수 있지만 사람을 속이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상업광고에 ‘속임수’라는 말을 붙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더 ‘좋은 것’에 대한 환상을 약속하는 떠돌이 약장수의 수사 정도는 분명 가지고 있어야 한다. 추석이 지났으니 백화점은 다양한 이름의 세일에 들어갈 것이다. 백화점 건물 외벽에는 붉은 색 글자 ‘SALE!’이 쓰여진 거대한 플래카드가 걸린다. 얼마를 쓰면 사은품으로 무엇을 준다는 미끼들이 넘친다. 다시 한번 신용카드의 위력이 발휘될 때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유혹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잠시 눈을 돌려 나를 노리는 주변의 미끼들을 골라 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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