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은 상속할 수 있어도 지식은 상속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교육에 온갖 정성을 쏟아 붓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10월 2일 발표한 ‘202개 지표(2001년 기준)로 본 대한민국’ 보고서에 의하면, 사교육비는 세계1위이고 이혼율은 3위이다. 사교육비를 부담하는 주체는 가정이다. 그런데 부부가 이혼하면 가정이 깨진다. 가정이 깨지면 자식들은 불행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 세계1위를 부담하고 있는 한국의 부부들은 세계3위라는 이혼율을 기록하고 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아이들을 사교육에 맡기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교육비 부담은 세계 1위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부부관계는 어디에 맡겨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혼율이 점차 높아 가기 때문에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맡기가 두렵다. 그렇지만 주례를 꼭 서야 할 경우에 나는 ‘대추·밤·감’ 삼실과 주례사를 하고 있다.
신랑 신부가 혼인을 하고 처음으로 폐백인사를 드릴 때 어른들은 ‘대추·밤·감’을 신랑 신부에게 주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한다. 감이 없을 때는 곶감으로 대신한다. 이런 풍습은 지구촌시대에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이다. 집안 행사에서 삼실과를 사용하는 이유는 가풍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혼인을 하는 신랑 신부에게 삼실과가 가정생활에 주는 의미를 되새기라고 다음과 같이 부탁한다.

 
대추 대추는 꽃을 피우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부부는 결혼하면 자식을 생산하여 종을 보존하고 대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대추에 담겨져 있다. 대부분의 다른 과일은 비바람이 몹시 몰아치면 익기 전에 땅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대추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면 불수록 잘 여무는 특성이 있다. 세상의 모든 부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하기 마련이다. 어떤 부부는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여 삶의 보람을 맛보지만, 어떤 부부는 세파를 이기지 못하여 괴로움에 처하게 된다. 비바람에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더 꿋꿋하게 열매를 맺는 대추를 보고 세파를 견뎌나가며 부부생활을 원만하게 하여야 한다. 즉, 대추를 생각할 때마다 부부가 어떤 어려운 일에 직면하더라도 가정을 지키며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꿋꿋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이해하려면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것(different)과 틀린 것(wrong)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와 다르면 틀렸다고 하는 데,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다르다. 부부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역시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

거의 모든 식물은 씨앗을 뿌리면 씨앗에서 떡잎이 먼저 난 뒤에 뿌리가 난다. 그러나 뿌리가 나고 줄기가 난 다음에 떡잎이 나는 식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밤나무다. 밤은 자식들에게 “뿌리 없는 줄기와 잎은 없듯이, 부모의 존재 없이 자식이 태어날 수 없다”라는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인륜의 끈을 상기시켜주는 의미가 있다. 한편 부모들에게 “씨앗이 양분을 공급하여 뿌리가 나고 줄기와 잎이 나는 것이니, 부모는 씨앗의 역할을 다하여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한다”라는 부모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의미가 있다. 신랑 신부는 결혼을 통해 시부모와 처부모를 새롭게 맞이한다. 또한 자식을 낳게되면 자신들 스스로가 부모가 된다. 밤을 거울삼아 부모를 잘 모시는 한편, 나아가 자신들이 2세를 생산하면 부모역할을 제대로 해야 된다는 것을 밤나무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콩을 심은 곳에는 콩이 나고, 팥을 심은 곳에는 팥이 난다. 그러나 감씨를 심으면 감나무가 되지 않고 감보다 조그만 열매가 달리는 고욤나무가 된다. 고욤나무를 감나무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욤나무가 어느 정도 성장하였을때 밑둥을 잘라내고, 좋은 감나무의 가지를 꺾어다가 접을 붙여야 비로소 감나무가 된다. 접을 붙이는 감나무 가지를 고를 때 열매가 좋고 병충해에 튼튼한 최상품의 감나무인가를 확인한다. 그래야 나중에 자기가 원하는 감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기를 때, 아이들을 좋은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감나무를 만들기 위해 접을 붙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고욤나무 밑둥을 자르는 아픔을 견뎌야 하는 것은 부모나 자식이나 마찬가지이다. 가정에서 자식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는 고욤나무 밑둥을 잘라내고 좋은 감나무 가지를 꺾어다 접을 붙이는 심정으로 자식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자식을 공교육기관이나 사교육기관에 맡기고 교육비만 부담하는 것으로 자식교육의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교육의 근본은 가정에서 비롯된다.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건축물이 안전하듯,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가정이 튼튼해지고 학교도, 직장도, 사회도, 국가도 튼튼해질 수 있다.

권대봉(사범대 교수, 성인계속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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