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경쟁이 있었다.” 서양미술사의 첫머리로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말이다. 경쟁이라는 말에 형제간의 질투심으로 존속 살인까지 벌어지는 구약 창세기의 어두운 인간사를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미술의 경우 다행히 경쟁심은 서양미술의 변화를 견인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미술가라하면 동서고금 고집스런 에고이스트들이고, 이들은 경쟁심리 같이 원초적 자극이 아니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서양 미술이 초기역사부터 작가들간의 공개경쟁을 아예 제도적으로 정착시켰다는 점은 앞으로 전개될 서양미술의 화려한 변신을 잘 예견해준다. 일예로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한 파이오니오스라는 조각가는 기원전 424년의 공모전에서 이긴 것을 자신감 넘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올림피아에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상의 받침기둥에 “승리했노라”라고 적어 놓았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이야기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전해 내려온다.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라는 두 화가가 벌인 결투를 우선 손꼽을 수 있다. 기원전 5세기후반에 활동한 제욱시스가 그림 속에 포도를 그리자 새들이 이것을 진짜 포도인 줄 알고 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의 라이벌 파라시오스는 “제욱시스는 새의 눈을 속였지만, 나는 사람의 눈도 속일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소문을 듣고 발끈한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의 화실로 달려가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자 파라시오스는 그 그림이 커튼 뒤에 있다고 답했고, 커튼을 열려고 했던 제욱시스는 곧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만다. 바로 그 커튼이 그림이었던 것이다. 흥분한 제욱시스는 순간적으로 파라시오스가 파놓은 덫에 걸린 것이다.

새의 눈을 속인 제욱시스의 그림은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화가 솔거의 일화를 연상시키지만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이런 이야기가 고대 그리스에서는 라이벌의 경쟁구도 하에 전개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두 화가간의 결투가 회화의 범위 안에서 애교 있게 벌어지는 덕분에 경쟁심리가 추악한 인식공격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도 다행이다. 이같은 경쟁은 이후 서양미술의 역사에도 계속 등장하여 관전하는 사람들의 구미를 한층 더 자극시킨다.

이왕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고대그리스의 라이벌 화가들 간의 결투 사례를 한 가지 더 들어보자. 기원전 4세기에 아펠레스는 그의 경쟁자 프로토게네스의 화실에 몰래 들어가 긴 직선을 긋고 나간다. 이를 본 프로토게네스는 그보다 곧고 더 바른 직선을 그 위에 다시 그었다. 아펠레스는 다시 돌아와 더욱 반듯하고 곧은 직선을 긋고 나간다. 이 같은 실력 대 실력의 진검승부는 서양미술에서 면면히 벌어지면서 하나의 전통으로 나가게 된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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