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3월 10일자 한겨레신문에 요약하여 기고했던 글의 원문으로, 한 교수님께 드리는 공개 반론 서한입니다. 이번 한승조 교수님의 기고문 사건에 대하여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어야 할 이는 바로 우리 고려대학교 구성원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랑스런 ‘민족고대’의 이름에 부끄럽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졸고를 올려 봅니다.

저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현재 대학원과정에 있는 학생입니다. 교수님께서 은퇴하신 후 입학하여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금번 교수님의 '식민지 축복론'에 대하여 교수님 글의 전문을 읽고 저의 생각을 밝히고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무례함보다는 한 학생의 이견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전체에 흐르는 교수님의 반좌파적 인식은 교수님 주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맥락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교수님의 입장 자체는 제가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다만 교수님의 식민지 평가에 관하여 저의 의견을 밝히고 싶습니다. 금번 교수님 기고문에서 일제시대에 대한 교수님의 주장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러시아에 병합되었을 경우 러시아의 공산화가 한국에 미쳤을 영향을 고려해 보면 당시 일본에 병합된 것이 오히려 다행한 일이다. 둘째, 일제 식민지는 한국의 근대화와 민족 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셋째, 일제에 병합되었던 쓰라린 기억은 한민족이 더욱 분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오히려 축복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수님의 주장에 대하여 저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첫째, 러시아 병합이라는 역사적 ‘가정’을 도입하여 일본으로의 병합으로 인한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시킬 수는 없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미일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거치는 일련의 과정은 일본이 한반도를 독점적으로 침탈하기 위해 주변 열강을 배제해 나갔던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한반도의 러시아 병합 가능성을 상정하셨던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점은 차치하고라도, 구한말 치밀했던 일본 침략정책의 궤적을 고려해 본다면 역사적 사실관계에서 최소한 러일전쟁 이후 한반도가 당시 러시아에게 병합되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에 병합되었을 경우의 위험성을 제시하면서 그 차악의 경우인 일본으로의 병합이 오히려 낫지 않았느냐는 주장은 역사적 가정을 들이대며 실제 발생한 문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설령 러시아에 병합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할 지라도(그것에 대한 판단 및 평가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일본에 병합된 '차악'이 곧 한국에게 축복을 주는 '선'으로 둔갑하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차악은 어디까지나 악이며, 일국의 주권 침탈은 침탈 그 자체로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제가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교수님의 주장에서 ‘근대화’의 개념은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학도로서 '근대화'의 기본 속성은 정치면에서의 민주화, 경제면에서의 산업화, 사회면에서의 합리화, 문화면에서의 세속화라고 배웠습니다. 정치학자이신 교수님께서 '근대화'라는 개념을 '산업화'와 혼동하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일제가 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해 철도를 놓고, 자국의 식량안정을 위한 수탈의 수단으로 산미증산정책을 수행하고, 병참기지화 정책을 위해 공장을 건설한 것이 과연 한반도의 민주화를 가속시키고 한국인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합리적 사고가 보편적 타당성을 띠는 사회의 건설에 진정 기여했다고 보시는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또한 문화면에 있어 일제시대에 한국 문화의 일부분이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학문적으로 정리되고 체계화된 것은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 접근, 그것도 많은 경우 식민정책의 수행을 위한 어용 연구가 태반이었던 작업들이 한국의 민족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문화적으로 동질성이 더 높은 일본과의 병합이 민족문화의 보존에 도움을 주었고 창씨 개명 등 민족 말살정책은 30년대 후반의 일로, 민족문화의 훼손은 크지 않았다고 주장하셨지만, 그것이 어떻게 '엄연한 훼손'의 실재에 대한 '발전'의 논거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인지요.

셋째, 일본의 식민사는 오히려 한민족의 역동성을 배가시킨 축복이었다는 교수님의 주장은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과거의 미화가 아닌가 합니다. 예컨대 음주운전자에게 자녀를 잃은 부모가 음주운전 방지 캠페인을 벌이는 시민운동가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불의의 뺑소니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이 장애를 극복하며 더욱 성장하는 감동적 드라마에서, 음주운전자나 뺑소니 운전자가 그들에게 과연 축복이었다고 강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형사처벌을 받거나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피해자들이 오늘날의 삶을 살기까지 얼마나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겪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피눈물나는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도리어 현재 그렇게 보람 있게 잘 살고 있으니 나에게 고마워하라고 한다면 누가 그 주장에 동조하겠습니까.

또한 교수님께서는 '소수의' 정신대 할머니들을 내세워 '예외적인' 전쟁통의 성적 착취행위에 대해 문제삼는 것이 못난 국민들의 못난 짓이라고 하셨으나, 국가의 무기력으로 인하여 역사의 희생자로 일생을 살아온 분들을 그들이 소수이고 예외적이라는 이유로(그러한 주장이 사실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최소한의 보상을 위한 일체의 행위가 못난 짓으로 매도되어야 한다면, 과연 무엇을 위해 정치학도는 정치철학을 배우고 정의의 의미를 고뇌해야 하는 것인지요. 정치의 본질이 권력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홉스의 자연상태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은 올바른 가치와 정의를 정치의 분명한 영역으로 다루어 온 수많은 선배 정치학자들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현재의 과거사 청산작업이 정권 유지를 위한 좌파세력의 책동이라고 하시면서 이와 같은 같은 주장들을 펼치셨지만, 교수님의 반좌파 성향과는 별도로 일본의 한반도 식민정책과 그 역사는 그 자체로서 공과가 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뜩이나 한일관계에 잡음이 많은 요즈음,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에서 비롯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평가할 것과 인정할 것, 청산할 것과 계승할 것이 상식과 역사적 관점에서 균형을 이룬 과거사의 평가가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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