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 고려대는 개교 100주년을 맞이했다. 분단의 비극과 광주의 아픔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과 IMF 사태 속에서도 고려대는 발전해왔다. 과거사에서 고려대가 한국에 기여한 점도 있고, 반대로 부정적 영향을 끼친 점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1세기 한국에서 고려대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롭게 개편되고 있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도록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춘 인재를 배출해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고려대가 나아가야 할 목표며 사명이라고 판단하고 있고, 학교가 추구하는 소위 ‘글로벌 프로젝트’를 그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 수여식 반대시위의 주동이 된 학생들과는 이건희 회장의 박사 학위수여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그러나 내가 그것 때문에 그 사태에 비판적이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머릿속에 든 생각이 다르고, 같을 필요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양한 의견이 경쟁을 통해 수렴되고, 나아가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역사 발전의 길이라고 믿는다. 개인과 집단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 중 ‘일부’가 수여식장에서 보인 ‘표현의 방식’은 문제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표성’을 갖춘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표현의 방식’은 고대생임을 넘어서, 대학생으로서, 예비 지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될 기본적 예의와 품격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개인과 집단이 자유롭게 자기의 의사를 표출하는 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존재한다. 그것은 ‘성숙한’ 표현의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인격을 훼손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 사용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박사학위 수여자격, 삼성의 경영철학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 중 일부는 방법론상에서는 틀렸고, 그로 인하여 다수의 고대인의 자존심과 명예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우리의 상처는 이건희 회장이 박사학위를 받을 만해서, 삼성의 경영철학이 도덕적이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메마르고 날카로운 표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건물과 학제 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사고와 학생의 조직에 있어서도 고대가 혁명의 주역이 되었으면 한다. 그 동안의 대학 사회는 너무도 일방적인 조직과 일방정인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침묵하는 다수는 이제 깨어날 필요가 있다. 학교 내의 다양한 학생 조직이 구성되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동시에 상대를 존중하면서 경쟁을 해 나가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개인의 삶도, 집단의 운명도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선택이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최악의 선택은 침묵하는 것이다. 침묵할 때, 우리의 운명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점유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고이 간직해왔던 나의 침묵을, 이번 사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고대신문에 바친다. 그것은 내가 우리학교가 도약을 넘어서 비상하길, 우리가 과거에 안고 있던 한계를 넘어서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고대가 갈 곳은 서로 뒹굴며 싸우는 밑바닥이 아니라, 세계의 정상이다.
김재연(영문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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