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판, 만만하게 볼 게 아닙니다’

N세대, 인터넷이란 단어는 이제 흔한 말이 돼 버렸다. 다수의 국민들이 네티즌으로 군림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네티즌들의 의견을 가장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는 곳은 당연 자유게시판. ‘A라는 아이디를 가진 네티즌은 B에 대해 C라고 지적했다”는 식의 보도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은 게시판에서 네티즌들의 생각을 포착함으로써 그 사회상을 읽어내기도 한다.  사이버문화를 논하는 데 있어, 첫 단추는 게시판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초면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이버공간의 자유게시판’(이하 「자게」)은 정보 제공 및 획득의 공간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어떤 정보를 요구하면서 “고대의 엠파스를 믿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인 「자게사랑」의 네티즌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자게」는 일종의 검색엔진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는 것. 광고나 홍보가 아닌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네티즌들이 귀를 기울이는 현상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자사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대행업체에 의뢰하는 것은 「자게」의 ‘벼룩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가장 자명하게 방증하고 있다. 정보검색 대행업체「싸이와처(www.cywatcher.com)」김배년 부사장은 “요청 기관들이 주로 외국계 기업이었던 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국내기업들의 의뢰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며 “기업들도 네티즌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특정 상품의 구매의사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게」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상에서 활발히 이뤄지는  ‘대화, 토론’ 덕분이다. 「자게」에서의 적극적인 대화 참여는 바람직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억지논리 펴기’, ‘말꼬리 잡기’ 등의 소모전이 벌어지기 일쑤이다. 이에 대해 최정은정 「사이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게시판에서 네티즌들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며 억지논리를 펴거나 심한 비난을 퍼붓는 것은  “반대의견을 접했을 때, 다수 앞에서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연구원은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게시판의 언어를 ‘말에 가까운 글’이라고 표현한다. 
 
“실명제 게시판의 경우나, 오프라인 상에서 안면이 있는 경우에는 대화의 양상 자체가 달라진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에서, 「자게」의 이러한 소모전이 ‘익명성’으로 인한 부작용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정보통신 전문가들은 현재 익명체제의 「자게」를 실명체제로 변환할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네티즌들의 성향이나 게시판의 목적에 따라 ‘익명’과 ‘실명’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중론을 이룬다. 평등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직장 게시판이나 정부게시판의 경우에는 '익명게시판'이 더 적합하며, ‘실명’ 체제 전환하는 경우에도 외부적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적 필요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각종 배설성 언어가 난무한 현재의 「자게」를 보고 ‘저질적인 시민의식’, ‘국민성’으로 직결시키는 의견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부서가 생긴 지, 3년 째에 접어든 오늘날 네티즌들의 윤리의식이 많이 향상된 것을 체감하고 있다”는 정보통신부 정보이용보호과 김태용 담당주사는 “지금의 「자게」현상을 과도기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다.

「자게」가 ‘살아있는 벼룩시장’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원인으로, 사이버 공간에서만큼은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네티즌들의 성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기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늘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자게」는 네티즌들 개개인의 ‘공개일기장’이나 마찬가지.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숨겨진 자아를 드러내게 하는 익명성”을 들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현실세계에서 감추고 있던 자아를 확인하고, 공감을 얻고 싶어하는 욕구가 잠재돼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억압됐던 욕구가 인터넷 상의 익명성을 통해 ‘자연스레’ 분출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스스로 억눌러왔던 담론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동성애’ 및 ‘자살’ 사이트 등이다. 이러한 사이트들이 주요 쟁점으로 대두되자, 일부에서는 “해당 사이트에서 ‘공공연히’ 올라와 있는 「자게」의 글을 보는 순간, 사람들이 그동안 지녀왔던 억압기재로 작용했던 죄의식에서 벗어나 자살을 할 충동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동성애자들과 자살시도가 인터넷 때문에 증가했다’는 성급한 논리는 위험하다. “예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한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이 변화를 맞아 공론화 된 것”이라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

노엄 촘스키는 『미디어비평(2002.1.4일)』에서 현대기술로 인해 가속이 붙게 된 독립언론에 대해 “인터넷이 민간기업에 장악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촘스키는 인터넷이 ‘국민의 도구로 건설되고 발전된 것’인 만큼 인터넷에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있다고 피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이 본능적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자게」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섣부른 판단일까.

김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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