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은 자발적으로 상담을 신청한 서울대 학생 204명 중 79%가 정신질환 관련 치료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학생들은 대부분 우울증을 겪거나 △불안증 △사회공포증 △광장 공포증 △두통 △소화불량 을 호소한다. 본교 졸업예정자인 김모씨는 “취업에 대한 압박이 커 최근 들어 대인기피증이 생긴 것 같다”며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정신적 부담감이 크다”고 밝혔다.

스트레스에서 시작되는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약화는 정신질환이나 장애로까지 악화 될 수 있다. 이는 대인기피증, 집중력 저하로 인한 학습부진 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휴학이나 폭행, 성폭력에 연루되는 경우와 심하면 정신장애나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본교 학생 상담소 연구위원 정정숙씨는 “학생들의 정신질환의 원인에는 생물학적인 원인도 있지만, 주위환경에서 비롯한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이와 같은 질환을 일으키는 것”이라며 “심각한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 고 말했다.

젊음의 상징이었던 대학생들이 이처럼 정신건강 위협을 받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채규만(성신여대 심리학과)교수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대학을 가기위해 지적인 면만 발달시킬 뿐 감성이나 나머지 부분의 발달이 부족해 균형 있는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균형 있게 발달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갑자기 몰려드는 책임감, 자유, 대인관계를 감당해 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껏 그들 주위의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가 만들어 놓은 보호막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와 주위환경에 의해 수동적으로 형성됐던 대인관계를 벗어나 자기가 능동적으로 모든 것들을 형성해 나가야하는 학생들에게 대학생활은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로 다가 올 수 있다. 본교 학생상담소 연구위원 오현주(본교강사·심리학)씨는 “공동학습과 공동생활을 위주로 하는 대학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상담소를 찾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12년 동안 머물렀던 학교 울타리에서 막 벗어난 20대들에게 대학은 낯선 환경인 셈이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상담한 결과 “대학입학 전까지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는 기능이 박탈된 점도 대학생 정신건강 약화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독립된 생활을 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하며 부모로부터 훈육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류대학을 가기위해 공부했을 뿐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미를 배우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학의 학부제는 학생들에게 고립을 안겨 주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오현주씨는 이에 대해 “학과 단위로 입학했을 당시, 학과 직속 선배들은 신입생들을 이끌어 대학생활에 쉽게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며 “하지만 학부제는 신입생 때 학과가 정해지지 않아 그들이 처음 대학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줄곧 지방에서 지내다 서울소재 대학교로 온 학생들의 경우, 소비문화가 주를 이루는 대학문화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로인해 학생 상담소를 찾아온 한 학생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함해 자신이 친구들로부터 도외시 된다고 느껴, 자존감 박탈과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교 3~4학년인 고학년의 경우,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취업과 장래에 대한 불안이다. 1980년대의 대학생들은 졸업을 하면 직장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이는 곧 그들의 평생직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학은 취업을 하기위한 수단일 뿐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다. 올해 초 성신여대 심리학과 연구팀에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정신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했다.

대학생들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주위의 시선이나 정신과 상담에 대한 편견으로 치료를 꺼리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채규만 교수는 “정신과 상담소나 학교 상담소를 이용하는 것에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며 “정신이 건강할 때 건강한 대학문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