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새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올 봄, 유난히 바람이 심하게 불었던 누나의 졸업식이 생각난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졸업생들과 그들을 축하하러 온 가족들과 친지, 친구들. 배경 좋은 곳에서 우리도 가족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오랜만의 가족 외출을 위해 준비한 영화 <말아톤> 시사회 입장권은 그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내가 일하는 신문사 이벤트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이 빠진 영화 <말아톤> 시사회는 나의 쿠키닷컴 첫 기사가 됐다.

한 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신문사에서는 축구 경기 티켓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이벤트가 끝나고 늦은 점심을 먹는데,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이 잘못됐다는…. 집을 나가 일주일 동안 소식이 없던 동생이 결국 차디찬 시신이 돼 돌아온 것이다. 사실, 수년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내 쌍둥이 동생은 세상과 거의 단절된 채 생활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지하철을 탔다. 멀게만 느껴지던 장례식장으로 걸어가면서 수없이 되뇌었다. ‘괜찮아,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그 상황을 어떻게든 외면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동생을 외면했던 것처럼…. 친구들 덕분에 장례식은 무사히 끝났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어머니의 권유로 주일학교 교사가 된 나는 여름 캠프까지 갔다 왔다.  아이들과 캠프 뒤풀이로 영화 <말아톤>을 봤다.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었던 영화를 동생과 어머니 덕분에 보게 됐다. 처음 보는 나에게 선뜻 다가왔던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동생이 떠올랐다. 생김새는 물론 성격까지 닮았던 우리는 점점 커가면서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생은 마음의 병이 생겼지만, 바쁘다, 힘들다는 핑계로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동생의 방을 열어보지 못했다. 동생이 집을 나가기 며칠 전, 동생과 난 심하게 다퉜다. 내가 동생에게 했던 심한 말은 그의 사망 소식이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왔고, 우리 사이의 소통은 그렇게 끝이 났다. ‘너를 사랑해서’라는 가족들의 잘못된 사랑이 그에겐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됐고, ‘가족을 위해서’라는 그의 잘못된 선택이 가족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 됐다.

영화 <말아톤>에서 경숙(김미숙)은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과 갈등한다. “초원(조승우)이, 힘들어?” 코피를 쏟으면서도 “안 힘들어”라고 하는 초원을 보고 경숙은 괴로워한다. “우리 애는 달리기 좋아해요.” “한번 뛰어 보고 말씀하시죠?” 코치, 정욱의 말에 경숙은 괴로워한다. “말을 하지, 왜 그런 식으로 반항해?” “수 백 번, 수 천 번 말했어. 근데 엄만 듣지 않았어.” 중원의 말을 듣고 경숙은 괴로워한다. 영화 <말아톤>은 타인과의 소통에 서투른 자폐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를 바라보는 비장애인들 사이의 서툰 의사소통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무의미한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하고 서로를 소외시키는 우리들의 잘못된 의사소통에 대해 말한다.

동생은 가끔 나와 싸우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리곤 했다. 그러면 난 화가 나서 방문을 발로 찼는데, 그 때 생긴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데 사람들 마음속에도 방문이 있다. 누군가는 방문을 닫아 놓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 방문을 열기 위해 애쓴다. 영화 속에서 치한으로 몰린 초원이 얻어맞는 장면이 있다. 그의 잘못이라면 얼룩무늬 치마가 얼룩말로 보인다는 것이다. 초원의 엉뚱하지만 순수한 마음이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다수가 힘을 합쳐 소수의 방문을 발로 걷어차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러면 문이 열리긴 열린다. 하지만 그 문에는 소외 받은 이들의 상처 자국이 남게 된다.

누구나 요즘, 날씨만큼 춥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방문도 상처 자국도 없는 그런 세상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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