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문이 올해로 창간 55주년을 맞았다. 그간 쌓아온 성상의 행로가 순탄치 않았음은 우리의 파란 많은 근대사가 대변해 주는 바 그대로이다. 수차례의 필화사건과 제호 강등, 존폐의 위기를 넘겨 오면서도 정의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분연히 독재정권에 맞서 정론직필의 필봉을 날렸던 선배 기자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 오늘의 고대신문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고뇌와 희생에 값하는 과정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4.18의 도화선이 되었던 ‘낡은 사회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라’와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거부한다’는 두 편의 사설은 고대신문이 견지해 온 자유와 정의에 대한 신념의 결정체요 오늘날까지도 시대를 달리해 살아 숨쉬는 사자후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고대신문은 그러한 선배 기자들이 닦아 놓은 길을 얼마나 올곧게 이어 가고 있는지 냉철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고대신문은 아카데믹 저널리즘의 구현을 위해 거듭되는 실험과 혁신의 과정을 거쳐 왔다. 84년에는 대학신문 최초로 가로쓰기 편집을 단행했고, 95년에는 기존 신문제작방식의 한계를 절감하며 ‘주제탐구 신문’으로의 획기적인 지면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5월부터는 편집 디자인을 혁신해 젊은 대학언론의 창조적 실험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급변하는 시대변화에 발맞춰 첨단 장비를 구비하고, 인터넷 신문의 발간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고대신문, 나아가 대학언론은 외부 사회의 변화와 그로 인한 내부의 매너리즘에 젖어 심각한 존폐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양한 정보매체의 등장과 그로 인한 학생들의 무관심은 대학신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상실케 했다. 방향성을 잃은 대학신문의 언표는 공허하고, 내부의 혼돈은 공허한 언표를 재생산해 낼  뿐이다.

전환기 속의 대학사회와 대학언론은 변화에 적절하게 창조적으로 대응하면서 자신의 역할과 방향에 관한 새로운 지형도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대학언론은 ‘이념 상실’의 시대로 말미암아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80, 90년대를 지나오면서 거대 담론에 눌려 분출구를 찾지 못하던 일상의 구체적인 실존적 문제들이 대두하면서 때로는 다양화, 전문화, 개성화란 이름으로, 혹은 개인주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란 이름으로 그 모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총체적 난국을 외부 환경적 요인에서만 찾으며 수수방관하거나 스스로를 위안삼는 태도는 사태를 제대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아니다. 진취적인 대학언론이라면 일반 독자들의 기호에 영합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양한 목소리를 한데 모아 올바른 여론의 형성에 기여할 것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를 시대의 변화에 맞춰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 안의 매너리즘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반성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시대와 영합하는 우리의 얄팍한 양심을 저항할 것이며 내부의 환부를 감추려 드는 거짓 초연한 마음을 고발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깨어있는 지성과 창조적 정신으로 재무장할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무기인 ‘글’이 이 모든 것을 증거해 줄 것이다.

시대는 변했어도 戰場은 변하지 않았다. 하여 여기 창간사의 말미 일부를 다시 옮겨 오늘 우리의 사명으로 새기고자 한다. “대체 글이란 그 사람의 회포한 뜻의 정수요 혼의 모습이요 의식의 반영이니…서로 엉키고 뭉치어 찬란한 업적을 이 민족과 이 대학의 전통위에 더함이 있기를 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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