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된 토론회였다.
예정된 시각보다 5분 정도 늦게 토론장에 들어선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은 박수로 맞이하는 방청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이 날 토론회에서는 400여 명의 방청객들이 LG-POSCO 경영관 대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자리를 찾지 못한 학생들은 대회의실의 맨 뒤에 서는 것도 모자라 계단까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작에 앞서 풍규형(경희대 경영04) 씨는 “이 시장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고려대까지 찾아왔다”는 기대를 밝혔다. 풍 씨 외에도 많은 학생들은 “시장과 대학 언론인들과의 대화에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일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기조발언 “시대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라”

이 시장은 기조 발언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위치한 시대적 사명에 대한 인식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사회적 담론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며 “대학언론이 창조적인 미래의 담론을 형성하는데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이 시장은 이어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타율과 통치의 시대를 지나 자율과 경영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며 “대학생들이 멀리 보는 시각을 갖고 이런 시대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것”을 이야기했다.

리더는 희망을 제시하고 젊은이들은 그것을 잃지 말아야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자 패널들의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이 시장은 ‘본인이 생각하는 리더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해달라’는 첫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될 수 있으면 좋게 평가하고 싶은데 그러면 흉을 볼 것이고, 나쁘게 평가하자니 그러기엔 일을 너무 잘 했다”고 운을 뗀 것. 이 시장은 “효율적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이 우선시돼야 한다”며 “세계는 이런 지도자를 원하는데, 나 자신도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시장은 학비를 벌어가며 어렵게 공부했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며 ‘희망’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이 시장은 “리더는 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이들에게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청년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중국이 최강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희망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불도저는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장비

자신의 정책과 견해에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평가와 불도저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도 이 시장은 재치 있는 답변으로 청중들을 자신의 논리로 이끌었다. 이 시장은 “불도저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장비인지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며 방청객들을 다시 한 번 즐겁게 했다. 이 시장은 이어 “스피드 경영 시대에 신속한 이행을 평가하기에 앞서 치밀한 사전 준비를 살펴봐야한다”며 “과거 신중한 경영의 사고에 젖어 있는 기준으로 보면 너무 빠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적 수준에 비춰보면 내 속도는 결코 빠른 것이 아니다”며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리더의 모습을 강조했다.

위기를 기회로

무난하게 진행되던 토론회였지만 비판적 시각이 섞인 질문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 산하 문화예술단체 사업과 관련해 ‘사업추진과정에 있어 의사소통의 부재’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 시장은 기다렸다는 듯 “이 질문을 안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다”며 여유를 보였다. 이 시장은 “취임 당시 서울시 산하의 문화예술단체를 살펴보니 세계 10대 도시가 될만한 서울에서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킬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며 한 번 단원으로 들어오면 능력과는 상관없이 정년퇴임할 때까지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문화예술단체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는 이어 “법인을 해체하고 정명훈 씨를 단장으로 모신 다음부터 오디션을 통해 단원들을 선발했다”며 “경쟁력 있는 문화예술단체를 만들겠다는 것과 없애자는 것은 다르다. 서울시의 수준에 걸맞는 문화예술단체를 만들겠다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직접적 답변 피하고 자신의 논리로 설명‘결과에만 집중하는 신개발론자가 아닌갗, ‘해결해야 할 사회갈등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는 질문 등에 대해서는 직접적 답변을 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시장은 대중교통 체계 변화와 광화문 횡단보도 설치 등 자신의 주요 사업을 먼저 설명했다. 이어 빈부격차와 사회 양극화 문제를 주요 논점으로 설정한 뒤 이에 대한 자신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이 시장은 IT국가를 표방하는 아일랜드ㆍ핀란드와 우리나라의 인구 차이를 설명한 후  노동집중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예를 들며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이어 “빈부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결국 국민들의 경제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며 “재분배를 통해 그 격차를 줄이는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하층이 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지역갈등 문제에 있어서도 “국민소득 3만불 시대가 되면 애향심은 생겨도 지역감정이나 배타심은 없어질 것”이라며 경제적 관점의 해결책을 이야기했다.

시장은 잠시 머물다 가지만 마인드를 바꾸려 노력

‘시장의 위치에서 기업 경영의 경험이 어떻게 발휘됐느냐’는 질문은 토론회 내내 CEO적 리더십을 강조했던 시장의 시정 경험을 가장 명확하게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시장은 “시장은 잠시 머물다 가지만 공직자들이 경영 마인드를 가지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다”며 “특히나 예산 편성ㆍ집행 방법에 기업경영 방식을 도입시켰더니 가용예산의 20%가 절약됐다”고 대답했다. ‘정치인보다는 경영인의 인상이 강하다’는 질문에 대해서도 “국제적 회의들을 가보면 국방과 이념의 논쟁에서 국민의 행복을 위한 아젠다로 논점들이 변하고 있다”며 “지도자 역시 이러한 이런 흐름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대학 역시 세계와 경쟁해야

대학교육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 시장의 입장은 뚜렷했다. 그는 “21세기 개방의 시대에서 대학 역시 세계의 다른 대학들과 경쟁해야 한다”며 “잠시 부작용이 있더라도 대학 교육을 자율에 맡겨 특성화되고 차별화된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가의 지나친 상업화를 지적하는 질문에는 “서울시도 노력하고 있지만 장사가 되니까 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다”며 “책을 사러 광화문에 가기보다 학교 앞을 찾는 등 대학가의 모습은 해당 대학과 대학생들이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 시장은 또 “대학가는 기본적으로 대학생과 그 지역 주민들을 위한 거리가 돼야 한다”며 대학과 지역 간의 연대도 강조했다.

참신한 질문 - 방청객들과의 Q&A

패널들의 질문이 끝나고 방청객의 질문을 들어보는 시간도 있었다. 오태호(경영대 경영05)씨는 ‘9급 공무원들의 이름을 몇 명이나 기억하고 있나’, ‘5분 이상 대화해 본 적이 있는갗등 참신한 질문을 해 방청객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이 시장도 “좋은 질문”이라며 ‘몇 명’이라는 직접적인 답변보다는 다소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시장으로서 6급 이하의 공무원들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들과의 대화 시간을 마련하려 부단히 노력 중”이라고 대답했다. ‘서울시가 여성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갗, ‘국가가 여성의 고용창출과 좋은 근무환경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갗라는 권오성(정경대 경제03) 씨의 질문에 대해서도 직접적 답변은 피했다. 이 시장은 “하급직 공무원은 여성들이 더 많지만 매니지먼트 분야에서는 여성들의 수가 적다”며 “분야별로 여성의 지위가 고르게 향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의 참석했던 패널들은 토론회가 끝난 후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밝혔다. 박형진 성대신문 편집장은 “토론회가 대학생들에 의해 직접 마련됐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임지영 중대신문 편집장도 “리더의 입장을 직접 들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며 “기존의 시각이 바뀌진 않아도 이명박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좋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생다운 시각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선희 이대학보 편집국장은 “기존 언론과 차별화된 시각이 부족해 방청객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른 패널들 역시 “방청객들의 질문 시간이 좀 더 많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거나 “정치적 질문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는 등 토론회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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