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은 우리 고려대학교의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고려대학교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이를 기념하여 다채로운 행사들이 많았었는데, 이 기념 행사들의 대미를 장식할 의미있고도 야심차게 기획된 공연이 바로 지난 12월 29일에 있었던 개교 100주년 기념 송년음악회였던 지라 교우인 동시에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서 정말 기대를 안고 참석하게 되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저녁 7시 30분에 시작되었는데, 입장권이 사전에 일찌감치 매진될 정도로 객석은 만원이었다. 프로그램은 우리 나라가 낳고 세계가 인정한 작곡가인 윤이상 작곡, 파벨 란도(Pavel Lando) 편곡의 '고려대학교를 위한 찬가', 불후의 명곡인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2>', 그리고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현대의 실력있는 러시아 중견 작곡가로 알려진 라린(A.Larin)이 수 개월 간의 고대 생활을 포함한 약 2년에 걸쳐 작곡했다는 역작인 '자유, 정의, 진리를 위한 교향곡' 등으로 구성되었고, 연주는 태국 출신의 서울시향 부지휘자인 번디트 웅그랑시(Bundit Ungrangsee)가 지휘봉을 잡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맡았다.

음악회는 고대 교가로 알려진 '고려대학교를 위한 찬가'로 짧지만 힘차게 막을 올렸다. 파벨 란도의 관현악 편곡의 특징은 관악기의 역할에 비중을 둔 전반적으로 웅장한 행진곡풍인데, 시작부를 비롯한 웅장하고 힘찬 부분은 금관악기가 주선율을 담당하여 힘찬 기백을 드러내었고, 후렴 시작부의 부드러운 부분은 현악기가 주선율을 담당하여 향수에 젖게 느낌을 자아내, 패기와 유대로 상징되는 고려대학교의 교풍을 잘 담아냈다고 느꼈다. 연주에 있어서는 시작부의 투명한 트럼펫 음색, 이어 곡의 전개에 따라 음향의 폭이 확대될 때의 하모니의 처리, 그리고 후렴부로 넘어갈 때의 분위기 전환 처리가 적절하여 좋았다.

첫곡 후에 잠시 사회가 있었다. 사회는 이두희 고려대학교 대외협력처장이 맡았고, 어윤대 고려대학교 총장과 교우인 이명박 서울시장의 인사말과 축사가 있었다. 여기서는 앞으로 매년 고려대학교 송년음악회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맡아서 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해서 기대하게 하였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지고 잠시 지난 후,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시작되었다. 워낙 유명하고 쉽게 접하게 되는 곡인데다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를 수없이 들어서인지 이 곡의 연주는 사실 국내 최정상급이라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 했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곡임에도 연주에서 개성적인 곡 해석을 통한 특별한 시도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평면적인 해석에 앙상블도 뻣뻣하거나 엉성한 부분이 많았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디테일에서의 전개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하였는데, 1악장과 3, 4악장의 웅장한 부분에서는 음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다소 실망하였다. 이는 연주회장의 건축 구조의 문제에 어느 정도 기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았다.

1악장 주제부 시작할 때나 프레이즈 연결에 있어서의 절도 있는 표현도 아쉬운 점이었고 현악기의 마무리 잔향 처리도 연주자들 사이에 서로 호흡이 어긋나 미흡한 부분이 간혹 느껴져 아쉬웠다.
그리고 한국 오케스트라들의 고질적인 문제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부분인데, 금관악기군의 음향이 귀에 거슬릴 때가 종종 있어 금관악기 연주자들의 기교가 더 요구된다고 하겠다.

15분 간의 휴식 후, 이어진 곡은 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히 위촉, 작곡되어 헌정된 '자유, 정의, 진리를 위한 교향곡'으로 이는 고려대학교의 교훈을 따서 명명한 것으로 일명 '고대 교향곡'인데, 이번 음악회의 중심 레퍼토리였다.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약 45분 정도 소요되는 대곡이었는데, 우리의 전통 음계와 악기, 그리고 정서가 서양의 그것과 만나 융합되어 있고, 고려대학교의 교가와 응원가도 녹아 있고, 4악장에서는 팝이나 재즈의 리듬과 선율이 담겨 있어, 그야말로 민족고대에서 세계고대로 나아가고 있는 고려대학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그려지고 있고 '大同'의 큰 뜻이 담겨진 의미있고도 재미있는 곡이라 하겠다.

곡이 시작되기 전, 먼저 악기 편성이 눈에 띄었는데, 일반적인 관현악 구성에 팀파니를 비롯한 각종 타악기, 하프, 마림바, 피아노가 포함되고, 색소폰, 드럼과 같은 비클래식 악기들, 그리고 북, 장구, 꽹과리 등의 우리의 전통 악기까지 포함된 대규모 편성이었다. 이러한 방대하고도 다양한 악기 편성을 비롯해서 악곡의 느낌도 후기 낭만파의 말러나 쇼스타코비치의 악곡 전개와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1악장 소나타 알레그로(Sonata Allegro)의 시작은 금관악기들의 서주로부터 점점 음향이 점점 확대되고 밝아지는데, 멀리서 동이 터오는 설레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서 계속 반복되는 테마가 등장하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5음계로 이루어진 웨이브가 느껴지는 유연한 가락으로서, 우리 전통 사회의 농촌에서의 평화롭고도 흥겨운 풍경을 연상시키는 선율인데, 서울시향은 생동감 있게 잘 표현해 냈다. 뒷부분으로 가면 우리 민요에서 종종 느낄 수 있는 다소 구슬픈 듯한 선율이 등장하여 우리 민족의 정한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후에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에서 느낄 수 있는 장엄하고도 다소 무거운 행진곡풍의 악곡 전개를 만날 수 있고 타악기의 효과가 주요한 듯 했는데 잘 표현되고 있었다.관악기의 고음 처리는 맑고 투명해서 좋았는데, 중탁한 저음 처리는 깔끔하지 못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2악장 안단테(Andante)는 초반에 북소리가 주의를 집중시킨 후 색소폰이 등장하는데, 얼핏 들으면 우리의 전통 관악기인 대금이나 피리와 비슷한 음색을 내고, 플룻은 단소 소리처럼 들리고, 마림바는 편경을 연상시키는 음색을 연출했다. 즉, 서양 악기에 우리의 전통 악기를 대응시켜 그 음색을 연주한 느낌으로 민족고대와 세계고대를 대비하는 듯했다. 솔로 주자들의 전통적 음색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3악장 스포팅 스케르초(Sporting Scherzo)는 작은북으로부터 흥겹게 시작되는데, Sporting Scherzo가 의미하듯 활기차고 해학적인 잔치 분위기로 5월의 대동제를 연상시켰다. 오케스트라는 탄력있고 생동감 넘치며 재미있게 잘 표현해냈다.
4악장 피날레(Finale)는 그야말로 여러 가지가 융합된 독특한 악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초반부에 조용하게 1악장의 주제 선율이 등장하고 행진곡풍의 악곡 전개가 이루어지는 등 회상 형식으로 1악장과 상당 부분 겹쳐 있었다. 행진곡풍의 전개 가운데에는 고대 교가의 선율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분위기가 전환되어 4악장을 위해 기다려 왔던 피아노를 비롯한 거의 모든 악기가 연주에 참여하면서 리듬도 대중적인 팝이나 재즈 스타일이 되고 그에 맞춰 고대 교가도 느낌을 달리 하며 전반적으로 흥겨움이 고조되는데, 또 어느샌가 우리 전통 악기들이 중심이 된 악곡 전개가 나타나는 등, 연주에 집중을 하고 있지 않으면 지금 팝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것인지, 재즈 페스티벌에 온 것인지, 사물놀이 공연을 보는 것인지 착각이 들 수도 있을 정도로 버라이어티하게 융합된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악장이었다. 대미도 거의 모든 악기가 하모니에 참여해 '大同'의 의미를 드러내며 흥겹게 마무리되었다.

4악장을 위하여 기다려 왔던 피아노는 결국 재즈 분위기를 돕는 용도로 쓰였다.
이 곡의 연주는 휴식 전의 '운명' 교향곡과는 달리 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 살아있는 연주를 흥겹고 재미있게 표현해내 감동적이었다. 이 기념 교향곡에 포커스가 맞춰져 '운명' 교향곡에 다소 소홀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곡이 끝나자 환호와 함께 우레와 같은 청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고, 지휘를 맡은 웅그랑시가 무대 가까운 객석에서 감상 중이던 이 곡의 작곡자인 알렉세이 라린을 무대로 불러 소개하였다.

앵콜은 웅그랑시가 수 차례 퇴장과 입장을 거듭한 후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다시금 힘차고 흥겹게 시작되었다. 나무랄 데 없는 생동감 넘치는 연주였고 청중들도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오케스트라와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 앵콜곡은 폴카로서 역시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갔고 살아있는 연주로 맛을 잘 살려 표현되었다.
청중들의 박수 소리가 끊이질 않자 막을 올렸던 고대 교가를 마지막으로 다시 연주함으로써 장중하게 막을 내렸다. 이 때에는 나를 포함한 많은 참석자들이 기립해서 개교 100주년 기념 송년음악회를 기렸다.

이렇게 음악회는 대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음악회가 끝난 후 로비에서 마침 라린을 만나게 되어 다가가 인사 나누면서 악수도 하고 '마에스트로(Maestro)'란 호칭으로 양해를 구한 다음, 단둘이서 기념 촬영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엄지를 치켜 세워 "Gorgeous! Great!"이라 평하고 세종문화회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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