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남짓의 우리는 원하는 삶을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나도 여기 저기 기웃기웃하며, 많은 경험들을 만났고,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그 과정에서 삶의 그림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나와 함께 하는‘벗’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벗’K와 나는 비슷한 점이 있어서로를 끌어당기기도 하지만, 마치 자석의 S극과 N극처럼 서로 다른 점이 있어 끌어당기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바탕은 ‘벗’ K와 나의 서로에 대한 믿음과 기대이다. 믿음이 바탕에 있기에 신변잡기적인 얘기도 반가이 들을 수 있는 것이고, 날카로운 충고도 달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때의 믿음은 단순히 상대에 대한 칭찬으로 기분을 좋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 단순한 칭찬은 아닌 것을 애써 긍정하는 것이나 상대의 허물을 무신경하게 덮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자신은 물론 상대방까지도 네모난 상자 속에 가두고, 그 위에 떼기 힘든 딱지를 붙여두어 고착화된 이미지로 묶어두는 것과 같다.“이 아이는 이런 애”하고 말이다. 이러한 인간 관계에서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이것으로 끝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나와 너 자체를 존중하면서 나오는 칭찬은 서로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러한‘벗’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기쁨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모르는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에 관심을 갖게 하고, ‘벗’으로서 기대하는 새로운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북돋아 주어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가 적용되는 것처럼 서로의 삶을 살찌운다.

믿음으로 함께 있어 서로가 발전하고 행복해지는‘벗’, 내 먼 인생 길의 동행자이자 큰 스승이다. 그‘벗’과 함께라면 새까만 칠흙 속에서도 밝게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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