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온갖꽃들이 자태를 자랑하며 멋들어지게 피었는데, 학창시절엔 인생을 논하고 문학을 논했을 때가 그립습니다.

그때는 달콤한 시 한구절이나 격언 같은걸 썼었는데, 세대가 많이 달라졌지요. 우리 세대는 활자세대이고 요즘 젊은이들은 영상세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우리 때는 등교하는 버스안에서 책을 읽는 학생들이 많았지요. 단정하게 땋은 갈래머리 여고생이 버스의 흔들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집을 꺼내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되새기 듯 창문 너머를 바라보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모습에 가슴 설레어 몰래 책 제목을 보고 외워두었다가 책방에 가서 사다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시집을 읽었지요. 친구놈들의 놀림 속에서 그 시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도 없었지만 그 서정적인 시어들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이고, 온 몸을 휘감는 알싸한 느낌에 낯 간지럽고 그랬지요.

하지만 요즘 버스나 전철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은 양쪽 귀에 이어폰을 꼽고 셀폰으로는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거나 오락을 하고 있더군요. 가끔 그 옆에 서면 이어폰으로는 감당하지 못한 소리들이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데, ‘저런 것도 음악이라고 하는 구나’할 정도로 제게는 소음과 같은 소리더군요. 노래도 가사보다는 멜로디를 위주로 듣는다더군요, 그래서  무슨 노래냐고 가사내용을 물어보면 ‘아직 뮤직 비디오를 보지 못해서 모르는데요.’란 희한한 대답이 나옵니다. 언어나 활자보다는 영상으로 풀이해야 이해를 한다는 것이겠지요.

뭐랄까, 우리 세대와는 사고회로가 상당히 틀리지요. 그래서 더욱 더 영상에만 익숙한 요즘 학생들에게 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군요. 시를 읽다가 보면  눈 앞에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지고, 또 한 편의 드라마가 전개 되잖아요. 내 맘대로 내가 주인공이될 수도 있고, 내가 짝사랑하던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할 수도 있구요. 그러면 그 시는 그 시인의 시가 아니라 내 시가 되는 거지요. 근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시집을 추천합니다.

얼마전 성신여대 유병례 교수님의 ≪당시 30수≫란 책을 보았는데, 어려운 唐詩를 쉽게 풀이해놓았더군요. ‘서정시의 황금시대를 보다’라는 부제에서 말해주듯이, 수 많은 시인들과 걸작들 그리고 다양한 시풍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감성을 노래하던 唐代는 서정시의 황금시대였지요. 그 황금시대의 금쪽같은 시들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시 30수를 뽑아 감칠맛나게 번역하고 독음까지 달아놓았더군요.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여럿이 어울려 술 한 잔 하거나 먼 길가는 친구를 전송할 때 멋들어지게 한 소절 뽑아볼 수 있는 그런 시들이지요. 독음을 표기하면서 의미절로 나누어놓아 의미를 파악하며 읽을 수 있고, 세세한 자구풀이도 잘 되어있어 좋답니다. 그리고 해설은 정말이지 시 한 수 한 수를 얼마나 섬세하고 재미있게 풀이를 하는지, 시 구절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흘러간 유행가 가사부터 2001년 강택민이 카스트로를 만나 쓴 시에 학생들이 올린 시 해석에 대한 질문까지, 읽다보면 어떤 때는 그 시에 대한 영화 한 편이, 또 어떤 때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눈 앞에 펼쳐진답니다. 왜 이런 즐거운 활자 여행을 마다하는지,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터질듯한 음악소리를 귀에 구겨 넣은 채 열심히 셀폰의 자판을 눌러대는 학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네요. 요즘 감성이 너무 메말랐다고 하잖습니까, 입시위주의 또 성적위주의 교육현실이 그 아이들을 팍팍한 감성의 세계로 떠 밀었으니, 우리 어른들이 반성을 해야겠지요. 그런 아이들에게 〈못 잊을 한이여 長恨歌〉를 통해 지고지순한 사랑도 가르쳐주고, 〈달빛 아래 홀로 술잔을 들다 月下獨酌〉로 사나이의 고독도 가르쳐주고, 〈달을 보며 먼 곳을 그리워하다 望月懷遠〉와 〈무제 無題〉로 그리움도 가르쳐주면 그 얼었던 가슴이 조금 촉촉해지지 않을까요?

시간이 나면 산에 올라가 제 감성에도 물을 줘야겠습니다. 이 책에 있는 杜牧의 〈산행 山行〉이란 시에도 나오듯이, 서리 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더 붉다지요? 이 책은 크기도 작으니 주머니에 넣고 정상까지는 못가더라도 산마루에 올라 〈유주대에 올라 시를 읊다 登幽州臺歌〉나 〈관작루에 올라 登?鵲樓〉를 되뇌이며, 지나간 제 인생에 대해 돌이켜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좀 진지하게 생각해볼까 합니다. 생각난 김에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려 이 책을 몇 권 사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로 보내야겠습니다. 2006년의 마음은 좀 서정적으로 하고 돋아나는 나무순의 여유를 배워야 겠어요.

손창봉 (시인. 61, 생물학과)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