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귀국한 5명의 일본인에 둘러싼 문제가 여전히 매스컴의 주요한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다. 최초에는 5인의 일본인을 북한으로 돌려보낼 것인가, 일본에 계속 머물게 할 것인가가 초점이었다면, 현재는 북한에 남아 있는 5인의 일본인의 가족들의 행보가 새로운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매스컴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일본으로의 귀환(!)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특히 납치되었던 일본인들의 자식들을 하루 빨리 일본으로 귀국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매스컴의 열띤 선동과 맞물려 여론을 몰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주장은 부모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북한에 남아있는 자식들도 일본인이라는 논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이들이 귀국했을 경우 일본사회에서의 성공적인 적응을 위한 조치들이 논의되는 가운데, 지난 11월 5일 와세다 대학에 이어 일부 대학들이 현재 북한에 있는 납치된 일본인의 자식들이 귀국했을 경우, 그들의 교육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차례로 발표했다. 와세다 대학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납치된 일본인들의) 자식들은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귀국 후 일본사회에의 순조로운 적응이 가능할 것인가가 염려’된다는 것이 이러한 계획을 발표하게 된 중요한 배경으로서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와세다 대학의 발표문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납치되었던 일본인들의 자식들을 일본국민으로서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본인을 부모로 두었지만, 그들이 일본이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북한사회에서 20여 년 가까지 살아온 일본인의 자식들을 북한사회의 일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일본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의 국민으로 볼 것인가는, 일본 매스컴과 교육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치 않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일본인 평론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실제로 현재 북한에 있는 납치된 일본인인 자식들이 일본사회에의 귀환이 여러 지원이 이루어지더라도 반드시 그들에게 행복한 인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의 교육과정을 통해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득 지니고 있을 그들이, 자신들이 일본인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란 사실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게다가 단지 부모가 일본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도 일본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리라는 것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이번 사건을 국민이라는 정체감을 무엇을 근거로 확보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의 복잡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모의 국적은 정체감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혼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는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에 남아있는 일본인들의 자식들을 부모가 일본인이라는 점을 들어 그들을 일본의 국민으로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끊임없이 북한이라는 나라가 매스컴을 통해 불신, 독재, 폐쇄, 비인간성이라는 단어로 표상(表象)되는 가운데, 일본의 국민들은 위험한 국가에 남아있는 일본인을 ‘안전하고 민주적이며 자유가 보장되는 일본’으로 하루빨리 귀환시키는 것이 올바른 방책이라고 확신해 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즉, 북한에 남아있는 일본인 자식들을 일본의 국민으로 호명하는 논리로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확대재생산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메이지(明治) 초기 일본인의 국민화가 서양의 국민국가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모델로 삼는 한편, 조선을 야만으로 부르며, 각종 부정적 이미지의 생산과정을 다른 한편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점이다. 즉,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표상화 작업이 메이지 일본이 조선을 부정적으로 표상했던 것과 거의 같은 논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메이지 초기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세력에 의해 이른바 자유민권운동이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이 운동이 결국 민권에 대한 국권의 우위를 확인하면서 막을 내렸다는 점, 그리고 이 운동의 한 가운데 와세다 대학을 설립한 오쿠마 시게노부(大隈茂信)가 있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자유민권운동은 메이지(明治)시대에 일본인에게 국민으로서의 정체감을 제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회운동이었다. 그러한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와세다 대학을 설립한 오쿠마 시게노부였다. 오늘의 시점에서 와세다 대학이 납치된 일본인 자녀들의 일본국민화를 위한 대책을 앞서 제창했다는 사실이 결코 놀랍지 않은 것에는 바로 이러한 역사가 놓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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