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찬은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를 통해 데뷔했다. 10년 이상 한국 대중음악의 메이저 필드와 그 뒤안길에서 활동하면서 솔직히 실력과 지명도에 어울리지 않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뛰어난 가창력에 비해 ‘달변가’라는 이미지로 일반 대중들에게 소개되었고,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사실에 비해 ‘뛰어난 가창 지도사이자 코러스 전문요원’ 정도로 프로페셔널들 사이에서 인식되었다. 한국 대중음악에 있어 조규찬의 미덕은 천부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몇 안 되는 ‘가인’ 이며, 그것이 고집스러운 아티스트적 자의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결코 대중추수적이지는 않지만 대중적인 필드를 바라보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저 필드에서 그와 같이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들을 선보인 아티스트는 드물다. 하지만 그것이 낯선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대중들의 나쁜 습관에 의해서 무시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의 야심적인 트랙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는 1995년의 한국 대중음악의 메이저 필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울풀한 트랙이었다. 이듬해 발표한 『충고 한마디 할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새로운 시도’들을 대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무시해버렸다. 조규찬의 모든 앨범 중에서 가장 히트한 곡이 그의 노래 중 가장 ‘흔한 스타일’이었던 『Baby Baby』였다는 것은 한국 대중의 수준을 알려주는 것임과 동시에 조규찬의 ‘마음만 먹으면 주류 점령은 언제나 가능’한 능력의 증거물이다.

1993년의 첫 솔로 앨범 이후 9년 만에 발매된 그의 두 장짜리 베스트 앨범은 이런 조규찬의 아티스트적인 고집 - 결코 나르시스트적인 자의식이 아닌 - 의 결정체이다. ‘팬의 베스트’와 ‘찬의 베스트’ 두 장으로 레퍼토리가 정리된 이 앨범은 총 24트랙을 수록하고 있다. 베스트 앨범이라는 것이 지니는 짜깁기적 특성을 과도하게 의식한 탓인지 그는 모든 트랙을 다시 편곡했고, 다시 녹음했다. ‘팬의 베스트’ 그 첫 곡인 『무지개』는 조규찬이 13년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한 보고서이다. 스트레이트했던 창법은 R&B적 기름기가 적당히 발려진 미끈한 목소리로 변했고, 퓨전적 감성이 지배적이었던 편곡은 미니멀한 컨템포러리 팝으로 변화했다. 클라이막스에서는 소년적인 ‘외침’이 아니라 능란한 가창자의 자신감이 느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리메이크가 전곡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박선주의 앨범에 수록된 히트곡 『소중한 너』의 리메이크인 2번 트랙은 정말 아쉬움을 던져준다. 애즈원의 뛰어난 가창력, 그리고 원곡보다 몇 배는 더 깔끔한 편곡, 거기에 조규찬의 완벽한 멜로디 운용이 빛나는 트랙임에도 불구하고 원곡의 감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가난하던 시절 맛있게 먹었던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라면이 지금, 계란과 각종 햄을 넣어서 먹는 호화 라면보다 맛이 있다는 감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악곡이든 어울리는 창법, 어울리는 기교, 그리고 어울리는 동시발음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곡은 이렇게 미니멀하고 깔끔한 편곡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그렇게도 많은 음표를 동반하는 장식음이 필요하지 않다. 더구나 박선주의 개성 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날카로움이 사라졌다는 것은 더욱 이 곡의 존재이유를 부정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몇 가지 아쉬움을 제외하고는 앨범의 흠을 잡을 이유가 없다. 특히 ‘찬의 베스트’는 조규찬 자신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호쾌한 선곡이며,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의 리메이크는 그야말로 조규찬이 그동안 쌓아온 내공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트랙이다. 이소라와 함께 메이저 필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자리를 양분하고 있는 그의 베스트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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