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여행은 항상 설레임과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 이유는 여행을 하며 마주치게 되는 우연한 만남들 때문이다. 국내여행에서 뿐만 아니라, 말도 통하지 않는 티베트나 아프리카와 같은 오지를 여행할 때에도 우연한 만남은 즐거운 추억이 된다. 하물며 서툰 영어를 통해서라도 말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

▲ 고흐의 그림 속에 그려진 '아를'의 한 장소
내가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은 “어느 곳이 가장 좋았어?”라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아를(Arles).”

아를은 고흐가 머물렀던 남프랑스의 시골 도시이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 고흐가 그렸던 풍경과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나 같은 고흐 마니아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게다가 아를에는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이 있어서 사학도인 나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도시였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이유만 가지고 아를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마르세유에서 아를로 출발한 것은 7월 26일, 뙤약볕이 내리쬐는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내가 이용한 완행열차는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그 속에서 20여분이 지났을 무렵, 기차는 마르세유와 아를 사이의 시골역에서 갑자기 정차했다. 그리고 당황한 목소리의 프랑스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내가 프랑스어를 못 알아듣고 있자, 한 젊은 여성이 나에게 통역해주었는데, 정말 황당할 노릇이었다. 그 내용은 ‘엄청난 더위와 태양열로 인해 아를역 근처 철로에서 화재가 났기 때문에 이 기차는 아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 중으로 다른 기차가 아를로 가기 힘들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곳은 너무나 작은 마을이어서 아를까지 가는 교통편은 철도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막막했다. 

그 순간 정말 영화처럼 어떤 프랑스 청년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한국인이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대게 유럽인들은 동양인을 보면 우선 "Japanese?"가 먼저이고, 그 다음으로 “Chinese?"라고 물을 뿐, ”Korean?"이라고 묻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그 청년과 계속 이야기를 해보니, 아버지 회사가 서울에 있어서 한국에 자주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줄리앙이었다.

줄리앙은 자신도 아를에 산다면서, 사촌동생이 차를 가지고 이곳까지 마중 나온다고 했으니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바로 "Okay" 대답을 했다. 하지만 모든 귀중품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하는 혈혈단신의 배낭여행객으로서는 그 청년의 호의를 마냥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창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아뿔싸.
 
그의 사촌동생이 차를 타고 나타났는데, 최홍만 같은 친구 1명과 같이 나온 것이었다. 사촌동생 자신도 스킨헤드인대다가, 몸을 온갖 문신으로 도배했다. 심지어 자동차도 문이 두 개 뿐인 스포츠카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나는 모든 것을 운에 맡긴 채 모험을 택했다. 결국 스킨헤드와 최홍만이 몰고 가는 스포츠카의 뒷좌석에 완전히 갇혀버리고 만 것이었다.

차는 끊임없이 시골도로로 달려 나갔고, 속도계는 14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순간 3인조 강도에게 붙잡혀 가진 것을 모두 털린 채, 끝도 없는 평야의 한복판에 내려진 나를 상상했다.

하지만 나쁜 상상도 잠시,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아를의 기차역 앞에 도착해 있었다. 게다가 앞좌석에 앉았던 스킨헤드와 최홍만은 나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줄리앙에게 물어보니, 그 둘은 자신들이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서 내가 불편해하지 않았을까 걱정했다는 것이다. 정말 기우였던 것이다.

줄리앙은 기차역에 세워둔 자신의 차로 나를 시내까지 바래다주었고, 저녁식사까지 대접했다. 자신이 한국에서 받았던 한국인들의 호의를 잊을 수 없어서, 아를에 오는 한국인들에겐 항상 잘해준다면서 말이다. 나에게는 고흐가 그렸던 카페를 바라보면서 먹었던 그날의 저녁이 수백 유로짜리 호화 만찬보다 더 맛있었다.

▲ 루브르에서 특별한 인연 마르첼로와 함께
여행에서 마주쳤던 좋은 사람에 대한 기억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런던과 파리, 스페인에서 함께 다녔던 선배들, 동기들도 그 중 하나이고, 로마의 민박집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도 그 중 하나이다. 이렇게 유럽에서 만났던 한국인들도 소중한 기억이겠지만, 역시 유럽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기억은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줄리앙만큼 특별했던 친구는 브뤼셀의 유스호스텔에서 만났던 마르첼로이다.

마르첼로는 남아공에서 온 이탈리아계 친구로서 영어와 이탈리아어에 능숙했다. 나와 그 친구는 같은 방이라는 인연으로 브뤼셀에서의 하루 관광을 함께 했다. 그리고는 각자의 일정대로 헤어졌는데, 우리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는 브뤼셀을 떠나 파리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며칠간 루브르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루브르의 간이 테이블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앞 테이블에 분명 낯익은 백인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설마 마르첼로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루 관람객만 수만 명에 달하는 이곳에서 불과 몇 일전에 유스호스텔에서 처음 만났던 친구를 다시 만나는 확률은 로또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아를의 도시 풍경
그런데 놀랍게도 내 앞에 있던 그 사람은 마르첼로였다. 우리는 너무 놀라고 기쁜 나머지 먹던 샌드위치마저 두고 서로 얼싸안았다. 그리고 서로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이렇듯 여행은 예기치 못한 만남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만남은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진다. 아를에서 만났던 줄리앙의 호의는 차를 태워주고 저녁 한 끼 대접한 정도였지만, 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그 덕분에 자칭 아를 홍보대사가 되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한국 배낭여행객중에는 이러한 여행의 참 맛을 놓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심지어는 한 달 내내 한인민박집만 전전하면서 친구들과 유럽여행을 했다는 사람들도 보았다. 극단적인 예일지 모르겠으나, 이런 사람들에게 유럽여행에서 만났던 현지인에 대해 물어보면 매표소나 안내데스크 직원에 대한 대답이 고작일 것이다. 

낮선 곳으로의 여행은 낮선 사람들을 사귀는 것에서 출발한다. 영어는 아주 기본적인 회화로도 충분하다. 유럽인들도 전부 영어에 능통한 것은 아니다. 즉, 유럽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는 약간의 행운과 적극성만 있다면 평생 잊지 못할 현지인과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임동민(문과대 한국사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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