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 얼음 위아래로 전기톱이 굉음을 내며 지나간 자리에는 펭귄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붉게 젖은 바닥을 작은 발로 딛고 있는 얼음 펭귄 무리는 피로 물들어 가는 지구를 밟고 서 있는 민중들의 모습이 아닐까.

지난 21일(목) 광화문갤러리(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열린 「21세기와 아시아의 민중展」 개막식에 맞춰 선보인 얼음 조각 퍼포먼스는 녹아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힘없는 민중들의 아픈 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21세기를 맞아 아시아 여러 나라 민중들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서로의 상처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미래의 과제를 논의하고자 기획된 것으로 한국, 중국, 일본, 팔레스타인, 쿠르드,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아시아 8개 국가 출신 작가들의 작품 81점이 선보인다. 미술평론가이자 이번 전시회의 총감독을 맡은 김윤수 실행위원장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미술은 서양 중심으로 흘러와, 정작 같은 아시아권에 속하는 나라의 미술작품들을 등한시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전시회가 실제 상황에 비해 심각하게 의식되지 못하고 있는 민중들의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에도 경제적·문화적으로 자본에 종속된 아시아 여러 나라의 현실이 회화, 판화, 사진, 만화, 컴퓨터 그래픽,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형태로 기록돼 선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및 반테러 전쟁과 같은 거대담론과 더불어 그로 인해 파생된 빈부격차, 빈곤문제, 환경파괴, 대량소비와 상업주의, 문화권력과 대중조작, 외국인 노동자 착취와 인권 유린 등의 문제를 상징적이고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특수 상황을 본다면, 분단·통일문제와 의문사 사건 등을 다룬 작품이 씁쓸하게 다가올 것이다. 또 지난 2002 한일월드컵 때 응원을 펼치는 사람들과 1980년대 대규모 민주화 항쟁 모습이 교차 편집된 영상은 흑백과 컬러의 차이와 흘러간 시간만큼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사)민족미술인협회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다음달 3일(화)까지 열리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문의 : 738-0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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