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 발간되는 고대신문은 나에게 있어 고려대라는 소속 집단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이다. 평소와 같이 수업을 끝내고 출구 쪽에 비치되어 있던 고대신문을 읽으며 기숙사에 도착할 즈음 나의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바로 ‘대학 재수강 제도’에 관한 글이었다. 수업과 학점, 그리고 재수강 제도는 대학생활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기사에서는 재수강을 유지하자는 학생들의 입장과 축소하자는 대학 당국의 입장을 비교하였으며, 타 대학의 재수강 제도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러한 비교는 평소에 재수강 제도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나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기사를 통해 받은 신선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조금은 남았다. 기사의 상당 부분은 재수강 제도에 관한 학생 측과 학교 당국 측의 주장이었으며, 남은 부분은 타 대학의 재수강 제도 소개로 메워졌다. 하지만, 신문의 기능이 단순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소개함에 그치지 않고 그 상황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나 그로부터 파생하게 되는 문제점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지적하여 준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이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기사에 아쉬움이 남았다.

재수강 제도의 문제점이 시작되는 곳은 학점을 취업의 기준으로 삼는 냉엄한 현실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로부터 재수강을 통하여 학점을 높이고자 하는 학생들의 요구와 정확한 평가를 내리고자 하는 학교 당국 간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학점을 요구하는 현실에 의하여 대학의 본질적 기능인 ‘자율적 학문’마저 위협받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재수강 제도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표출된 여러 문제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매번 학우들의 수강신청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수강신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과목’인가가 아닌 ‘나에게 얼마나 좋은 학점이 나올 수 있는 과목’인가이다. 학점을 요구하는 현실은 자율적 학문의 상징인 대학 내에서까지 그 자율성을 침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신문은 나에게 있어 2만 고려대 학우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창(窓)과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대신문이 존재함에 한명의 재학생으로써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하지만 고대신문이 독자들로부터 더욱 사랑받기 위해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전해주는 단순한 전달기관으로써 만족할 것이 아니라 모든 고대 학우들이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창(槍)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구병수 (정경대 경제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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