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상류층과 지식인,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선 문화를 즐기는 제니(Zennie) 군은 아침에 눈을 뜨면 틱낫한 선사의 명상테이프를 들으며 마음을 고요히 한다. 샤워를 한 후엔 햇볕이잘 드는 부엌 식탁에 앉아 잠시 거실 쪽을 바라본다.

블랙과 화이트를 주조로 한 장식은 단순 소박하면서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젠(Zen) 디자인으로서 전문장식가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이다. 벽에는 젠과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연상시키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그림도 걸려있다. 아침을 가볍게 먹은 후 나이키 젠 슈즈를 신고 가까운 사무실로 걸어간다. 이 신발은 맨발의 느낌을 주는 워킹슈즈다. 사무실로 들어간 그는 정장구두로 갈아 신고 근무를 시작한다. 점심시간엔 젠 카페에 가서 캘리포니아롤을 먹는다.

이 집은 야채를 듬뿍 넣은 자연식 야채롤이 인기며 해마다 지역에서 베스트25위 안에 들어가는 인기식당이다. 퇴근 후에는 서점에 들러 마음을 살찌우고 치유해주는 책을 둘러본다. 온통 제목에 ‘젠’이 들어간 책들이 많다. <젠과 무술>, <젠과 운전> <젠과 부모되기> <젠과 어머니 역할>을 비롯하여 심지어 <젠과 오토바이 관리>까지. 마치 젠이 모든 것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마술용어인 듯하다.

이것이 현재 미국 대중문화에 새로운 활기를 더해주는 선문화이고, 선불교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과 일본으로 역수출되고 있는 문화다. 이 선문화의 표제어는 단순함, 소박함, 자연성, 깨끗함이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삶,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꽉 찬 스케줄, 이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이들을 구원해주는 것은 바로 고요한 정지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비워내는 것이다. 그래서 집안의 공간도 비우고, 장식도 되도록 배제해 잠시나마 마음의 공간을 비워 여유를 찾는 것이다. 그것이 젠 디자인과 젠 명상의 요체다.

미국인들에게 젠은 유년의 순수성, 생기발랄함, 순간적인 자연발생적 재치, 때 묻지 않은 유희정신을 의미했다. 그래서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엔 다 ‘Zen'을 붙였다. 그래서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재치 있으며 경박하기까지한 대중적 젠 문화상품이 나왔다. 일본의 대중적 선문화가 다도, 젠 가든(Zen Garden) 정도였다면 미국의 그것은 다양하게 세분화되고 현대화된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물론 미국의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불교문화가 선불교 일색은 아니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불교지도자가 선불교의 틱낫한 스님과 티벳 불교의 달라이 라마로 양두마차를 이루고 있다 보니 티벳 불교 역시 미국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양대 불교가 미치는 영향은 두 스님이 입은 가사의 색채가 그대로 상징해주고 있다. 갈색과 회색 가사를 주로 착용하는 틱낫한 스님의 선불교가 질박함과 단순함, 조용함을 상징한다면 붉은색과 황금색의 가사를 착용하는 달라이 라마의 티벳불교는 역동적이고 원색적이고 활력 있는 인간 감성을 일깨워낸다.

서양이 불교를 만난 효시는 기원전 1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장군 메난데르(Menander)가 인도를 침략?정복한 후 결국 인도 북서부의 왕으로 남아서는 비구승 나가세나에게 불교를 배운 기록이 밀린다왕문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인도 대륙을 침공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내면을 침공한 것은 그가 정복한 백성들의 철학이었다.

이후 1800년대에 서양에서는 힌두교와 노장사상 같은 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동시에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아 영국과 프랑스가 진출하면서 이곳의 불교문화가 본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 서양에 먼저 영향을 미친 불교문화는 테라바다(Theravada) 즉 우리가 소승불교라 부르는 것이었다.

선불교가 서양에 전해진 것은 1960년대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를 필두로 하여 ‘비트 선(Beat Zen)’을 전한 비트의 문인들 중 하나인 앨런 와츠(Ellen Watts)라는 달변의 미국인이 앞장섰다. 그들은 신비주의를 강조하고 의도적으로 불교라는 말과 불교적 색채를 삭감했다. 정통 수련을 한 적도, 승가에 들어온 적도 없었던 다이세츠와 와츠는 미국 대중의 구미에 맞게 불교를 전하여 불교 확산에 큰 공헌을 했다.

이들이 낭만적이고 철학적인 면을 강조한 불교를 전했다면 얼마 후 샌프란시스코에 자리잡은 스즈키 순류 선사(禪師)는 수행 중심의 선불교를 전파했다. 이상과 같이 선불교 전파의 초기역사를 보면 일본인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과 서양에서도 일본 선불교에서 선을 배우고 그를 삶에 적용, 발전시키게 되었다.

또한 불교명상수행이 서양에 전파되면서부터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지식인층이 바로 고통받는 환자를 상담하고 정신을 치료해주는 심리치료사, 카운슬러, 정신과 의사들이었다. 당연히 이들은 마음을 공부하는 불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이 불교를 배우고 그들 중에 불교를 가르치는 법사들이 배출되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두 분야의 융합, 즉 퓨전이 일어나게 됐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 역수출되고 있는 젠 문화와 서양불교문화가 일본선불교의 영향을 주로 받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일본문화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문화란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생명과 만물 그 자체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이 거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요소를 더하고 싫어하는 요소는 빼면서 그렇게 선 문화와 불교문화도 발전해갈 것이다.

선불교의 종주국으로서 우리는 왜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선불교를 필요로 하는지, 그런 그들을 돕는 방법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불교라 생각했기에 시인 게리 스나이더(Gary Sherman Snyder)는 선에 입문하러 일본으로  가기 전 캘리포니아에서 그런 자유를 실험하는 생활을 체험했다.

그런 그를 모델로 해서 케루악(Jack Kerouac)이 저술한 소설 <다르마의 백수(Dharma Bum)>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일은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현재 한국에서 국민소득이 늘어나면서 몸과 마음의 쉼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1960년대 미국인이 그랬듯이 우리 한국인도 이제 질주를 멈추고 쉬면서 비워내고 싶은 때를 맞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질주를 멈추고 잘 비워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소설, 영화, 연극, 그림, 조각, 노래 등의 다양한 형태로 그 방법을 전달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질박한 자연을 닮은 고전 선문화를 잘 보존하면서 동시에 모던한 현대 선문화를 개발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진우기(불교전문번역통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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