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불교를 서양에 전파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 1870~1966)는 그의 저서 <선이란 무엇인가?>에서 “선처럼 어느 방면에서건 설명 가능한 구체성과 창조성을 겸비한 종교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더욱더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바람처럼 현재 일본식 선(禪)인 젠(Zen) 문화는 젠이라는 일본식 발음이 국제용어로 통용되며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다.

젠은 서구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우주의 본질인 마음에서 진리를 찾는 것,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을 의미하는 동양의 이미지이다.

17세기부터 시작된 불교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동정심의 근거를 형이상학적으로 해명하는 과정에서 불교철학을 근거로 든 후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1950년대부터 독일에서 선불교가 연구됐다. 이러한 움직임이 이어져 젠은 합리주의와 기계 문명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양에서는 ‘젠’을 체험하는 공간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영국은 남부의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에 유럽 최초의 승원(僧院)인 칫타비베카(Chittaviveka, ‘고요한 마음’이라는 뜻)가 1979년에 건립돼 많은 사람들이 좌선을 통한 정신수양을 하고있다. 이어 스위스 칸데르스탁(Kanderstag) 승원, 오스트레일리아에 서펜틴(Serpentine) 승원 등이 설립됐다. 미국에는 캘리포니아의 멘도치노 카운티(Mendocino County)에 소재한 레드우드 밸리(Redwood Valley)승원이 운영 중이다.

불교전문번역통역가 진우기 씨는 젠의 절제미가 1990년대에 전 세계 유행을 주도했던 서양의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융합돼 인테리어 트렌드로 자리 잡아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승가풍의 의자와 침대, 무릎 높이의 테이블 등 극도로 절제된 디자인의 가구들이 나온 것이 한 예다. 동양적이고 자연적인 소재인 대나무나 나뭇잎을 응용해 만든 가구 역시 자연과 일치돼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하는 젠의 특성을 보여준다.

젠 테라피(Zen Therapy)도 일본 선 사상이 적용된 사례 중 하나다. 젠 테라피는 일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을 치료하기 위한 명상을 말한다.

동국대 박지숙 강사는 “선 사상 중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내 마음에서 모든 것들이 비롯된다는 것을 명상 등의 젠 테라피를 통해 깨달음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아직 젠 테라피 전문센터가 없는 초기단계지만 서양에서는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설명했다.

젠 문화의 빠른 확산에 대해 진 씨는 “미국이 젠을 상품화 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 보다는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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