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학점의 악몽,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F학점의 악몽,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 고대신문
  • 승인 2007.04.2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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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지금의 중앙광장 자리에 위치한 대운동장이 본교의 대표적 상징이었다. 하지만 2002년 중앙광장의 완공 이후 대운동장의 역사는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학생들의 집회장소로 이용됐던 민주광장은 드문드문 잔디가 보이는 흙바닥이었지만 1999년 6월 벽돌 블록이 깔리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다람쥐 길은 10여년 전만해도 마치 숲 속 오솔길 같았다.

지금의 절반 정도의 폭이었던 다람쥐 길은 1995년 6월 공사를 통해 예전보다 좀 더 넓고 포장된 길로 변신했다. 지난 1957년에 지어져, 건축사(史)적으로도 의미있는 대강당은 지난 2003년까지 강의실로 이용됐다. 대강당 강의실에선 주로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의가 이뤄졌다.

본교생들의 단골 식당인 저렴한 학생식당. 학생회관 1층에 있는 학생식당은 1971년 학생회관이 건립되던 때부터 존재했다. 이외에 1986년 후생복지부가 생겨 교내 식당의 체계가 잡힐 무렵,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깡통’이라 불리는 소형 매점도 등장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강신청 기간에 마음을 졸이며 포탈을 클릭한다. 지난 1997년까지만 해도 OMR카드에 마킹을 해 수강신청을 했다. 1998년경부턴 온라인으로 수강신청을 시작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조기수강신청을 받아 학생들의 수요파악 후 수강인원을 배정 했다.

하지만 그땐 지금보다 대형강의 수도 많았고 복수 ? 이중전공제도도 활성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도한 수강신청 경쟁이 없었다. 그리고 1960년대까지 학생들의 시험성적은 100점 만점으로 표기됐다. 때문에 현재와 같은 ABC제도로 변경된 1970년대부터 F학점에 대한 악몽이 시작됐다.

서창 정문의 교문에는 비화가 있다. 이 교문은 지난 1965년 5월 5일 본교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교우회에서 모교에 기증한 국내 최초의 석조 교문으로 안암캠퍼스에 위치해 있었다. 이후 안암캠퍼스의 확장으로 새 교문이 세워지면서 ‘중부권이 고려대학교 전진기지’라는 의미로 지난 1995년 현 위치에 옮겨진 것이다.

한편 조치원에서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된 지난 1981년에는 하숙집이 부족해 학생들은 학교 주위 일부 농가의 닭장을 개조한 ‘닭장 맨션’에 거주했다. 이러한 학생들의 생활고는 1989년 2월 호연학사가 개관하면서 사라졌다.

콜택시가 아니고서는 택시잡기가 힘든 서창캠퍼스에서 시내순환 셔틀버스가 운행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96년. 이전까지 시내나 역에서 강의실까지 걸어오거나 택시를 이용했던 학생들에게는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희소식이었다.

점심시간이면, 학생회관 구판장의 라면은 언제나 학생들의 인기 품목이다. 현재 학생회관에서 운영되는 각종 편의시설은 한때 서창캠퍼스 내 여러 건물에 흩어져있었다. 구내서점은 도서관에, 구판장과 우체국은 인문관에 위치했다. 이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것은 지난 1998년 학생회관이 신축되고 나서의 일이다.

정지은 기자 jieun921@kunews.ac.kr
김효원 기자 hyo@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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