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연산조 한양 궁궐을 배경으로 지난해 1200만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 <왕의 남자>. 역사를 소재로 해 관객을 시대 속으로 끌어들이는 영상물들은 영화로, TV드라마로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물들의 생생함을 높여주는 것들이 있다. 바로 소품과 장식, 세트다. 옛 의상, 머리장식, 건물 등을 어떤 방식으로 실감나게 재현할 수 있었을까?

‘문화원형’이란 국가 혹은 민족의 구성원이 무의식적으로 공유, 공감하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 원형으로 이들은 우리의 역사, 민속, 설화, 그림, 음악, 복식, 건축 전반에 오롯이 녹아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원장=서병문, 이하 진흥원)은 이러한 추상적인 문화원형을 이미지, 영상 등의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콘텐츠로 만드는 사업을 지난 2002년부터 진행해왔다.

그 동안 이 사업에는 280여개 단체 약 3500명이 참여해 약 60만개의 아이템이 포함된 160개 문화원형 과제를 개발했다. 과제란 구체적인 주제에 속하는 콘텐츠들의 묶음이다. 과제들은 이야기형, 예술형, 경영 및 전략형, 기술형 네 가지 소재 분야에서 각각 플래시, 스토리집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문화원형 과제 개발은 진흥원이 홈페이지 및 일간지 공고를 통해 포괄 주제를 제시하는데서 시작된다. 여기에 각 단체들이 구체적인 주제를 기획해 신청하고, 선정이 되면 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과제를 개발한다. 
  
한 예로 (주)픽셀즈는 고서 표지의 독특한 문양에 착안해 ‘한국의 고서문양’ 콘텐츠를 만들었다. 과제를 위해 4,000여점의 능화문 사진 및 탁본자료를 확보한 후 코드별 분류 체계를 완성했고 문양을 추출한 다음 디지타이징(digitizing)작업을 통해 2D 이미지, 3D 모델링, 플래시 시뮬레이션, 문양집 제작 등의 콘텐츠로 만들었다. 또 ‘철기문화원형’ 콘텐츠는 지역적 연구와 접목시켜 개발했다. 정희영 기획팀장은 “충북이 철기 문화의 중심지여서 관련 자료를 연구하신 교수님들과 연계하여 공동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개발된 과제들은 문화콘텐츠닷컴(www.culturecontent.com) 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에 유 · 무료로 서비스 되고 있다. 콘텐츠들은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각종 분야에 시각적, 내용적으로 참고할 자료를 제공하는 창작 소재로서 유용하게 활용된다.

<왕의 남자>의 실감나는 세트는 조선후기 한양도성의 주요 건물, 장소들을 배치도와 이미지 맵, 3차원 모델로 복원한 ‘디지털 한양’ 덕분이다. ‘디지털 한양’은 영화 기획 단계부터 시나리오작업, 그리고 경복궁 복원 3D 버추얼세트를 통한 화면구상 모의촬영 시뮬레이션에 사용 돼 제작비도 크게 절감했다. 드라마 <황진이>도 ‘조선시대 기녀문화’ 콘텐츠의 복식, 머리 장식 등을 참고해 조선시대 기생의 고운 자태를 살려냈다. 2000년 전 고구려 건국의 역사를 담은 드라마 <주몽>의 바탕에도 ‘고대국가의 건국설화이야기’ 중 고구려고분벽화 콘텐츠가 포함됐었다.


캐릭터 개발에도 문화원형 콘텐츠는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주)부즈는 ‘문화원형관련 동물아이콘 체계 구축 및 고유복식 창작 의인화 소스 개발’과 ‘한국 전통 머리모양새와 치레거리’ 등을 참고해 캐릭터 ‘묘&가’, ‘뿌까’의 의상, 동작 등에 반영했다. 이 중 뿌까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 돼 올 4월부터 유럽, 남미 등지 30여 개 국에 방영 되고 있다.

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한국의 고인돌’ 콘텐츠 등을 교육 자료로 활용했고 e-러닝 부교재 제작에 약 1,750여개의 문화원형 콘텐츠를 활용했다. 이외에 문화관광부의 상장 및 표지 제작뿐만 아니라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6행사 등에도 활용돼 공공 문화 인프라의 역할도 하고 있다.

또한 문화콘텐츠부문 수출 실적은 주목할 만 하다. 게임 산업은 반도체 산업의 두 배 이상의 실적을 거두고 있다.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수출 실적은 매년 작년 대비 평균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캐릭터 응용 사업으로 올해 15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부즈의 신종훈 이사는 “한국적 모티브를 더한 독특한 캐릭터의 다양한 활용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문화원형과의 결합은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의 생산을 돕는다.

조창희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장은 “문화원형콘텐츠는 원천자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콘텐츠 산업 강국으로서의 주도적 위상을 갖추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진흥원 문화원형팀 김기헌 팀장은 “문화콘텐츠산업에서의 ‘전통문화 르네상스’를 통해 향후 문화원형사업의 미래가치를 다각적으로 분석·반영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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