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조준석 난계국악기 제작촌 현악기 공방 대표는 공명통을 도자기로 개량한 도자기 해금을 들고 과학기술부 소속의 IT분야 기술혁신과제 특화사업단을 찾았다. 도자기 해금을 본 심사위원단은 일제히 수군거렸다. 요지는 ‘어떻게 국악기가 IT가 될 수 있느냐’였다. 그러자 조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IT위에 소리가 있지 않습니까? 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 수 있도록 기술혁신 한다는데 뭐가 문제가 됩니까?” 그러면서 조 대표는 도자기 해금과 공명통이 대나무인 일반 해금의 소리를 심사위원들 앞에서 들려줬다. 그해 도자기 해금은 IT분야 기술혁신과제 특화사업에 선정됐다. 도자기 해금에서 나는 소리가 일반 해금보다 맑고 깨끗하다는 것을 심사위원들이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실에 조대표가 직접 만든 개량 가야금이 전시되는 영광도 얻었다. “하루도 국악기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고 말하는 조 대표. 그와 국악기 개량 작업과의 인연은 3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국악기를 제작하던 삼촌의 영향으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제작현장에 뛰어든 그는 젊은 시절부터 국악기에 미쳤었다. 매일매일 거듭되는 고된 훈련과 대패질 탓에 하루도 손톱에 때가 끼지 않은 날이 없었다. 조 대표는 “손톱에 때가 시커멓게 낀 채로 친구들과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모두 창피해했다”며 그 시절을 되새겼다.

기술을 닦은 후 조 대표는 자신만의 국악기 제작 업체를 세우기 위해 지난 1985년 광주를 찾았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것이 남도국악사였다. 국악인들 사이에서 ‘남도 국악사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도국악사는 소위 잘나가는 국악기 제작소였다. 그러던 중 조 대표는 지난 2001년 충북 영동군으로부터 30억을 투자해 새로 만든 난계 국악기 제작촌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겨우 기반을 마련했는데 굳이 새로운 곳으로 갈 필요가 있냐며 만류했다. 하지만 불모지에서 뭔가 이뤄보고 싶다는 열망은 그를 제작촌 대표의 길로 이끌었다. 제작, 홍보, 판매 등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지난 6년간 조 씨를 비롯한 6명 내외의 제작자들은 휴일도 모두 반납한 채 새벽 6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꾸준한 노력 끝에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 난계 국악기 제작촌은 문헌상에만 존재하던 고대 유적 출토 악기인 백제시대 ‘양이두’와 고구려시대 ‘요고’를 복원했다. 같은 해 ‘저음해금’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또한 원래 12현인 가야금을 15현, 20현, 25현등으로 개량해 음역을 넓혔다. 이 외에도 거문고, 북, 장구 등 다수의 악기가 조 대표의 손을 거쳐 개량됐다. 지난해 말에는 개량아쟁 제작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현악기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 대표는 기계도 발명했다. 현악기 장력 측정 장치가 그것이다. 현악기 장력 측정 장치는 현악기를 구성하는 현의 소리 신호를 마이크로폰으로 측정해 현의 장력을 보여주는 기계다. 그는 “국악원 전문가들이 이런 걸 만들어야 하는데 허구한 날 음역 정의 문제만 붙들고 있어 그냥 내가 만들었다”고 말했다.

조 대표가 만든 제작촌의 악기는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조 대표는 “최근에는 호주와 뉴질랜드 쪽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그는 5년 후에는 직접 해외로 나가 국악기를 홍보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는 6월 일본과 연합해 여는 한일 전통악기 특별전이 그 활동의 시작이다. 조 대표는 “바이올린, 첼로만으로는 글로벌 시대를 잘 헤쳐나갈 수 없다”며 “세계 각국에 퍼진 우리나라 대사관에 국악기 제작 코스를 마련하고 홍보에 힘쎠 우리의 소리를 세계화 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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