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방학 송민지(문과대 영문06) 씨는 일본여행 도중 도쿄의 한 서점에 들렀다. 호기심에 한국문학을 찾았지만 일본의 서점에서 한국문학작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외국의 많은 책들이 책장에 진열돼 있었지만 그 속에 ‘Made in Korea’는 없었다.

현재 외국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은 이웃인 일본에 비해 한참 뒤쳐져있다. 한국문학번역원 교육운영팀의 권세훈 씨는 “세계시장에서 한국문학의 인지도는 생각보다 낮다”라며 “소설가 조정래 선생에게 외국평론가가 ‘한국에도 고유한 소설이 있느냐’고 물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인지도가 낮으니 해외시장의 수요도 적다. 한국문학작품의 외국어번역을 지원하는 대산문화재단의 박현준 씨는 “외국시장에서 먼저 우리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판권을 수입하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며 “현재 우리로서는 출판비용을 지원해서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을 도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한국의 상황에 비해 아시아문학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일본문학의 세계진출은 부럽기만 하다. 세계 각국의 서점에는 일본문학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등 유명 일본작가들은 해외에서도 작품 당 백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렇게 일본문학이 인정받게 된 데는 걸출한 작가들의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이 한 몫을 했다. 일본은 이미 1960년대에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또한 지난 1994년에는 오에 겐자부로가 다시 한 번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권위 있는 상의 수상은 그 나라의 문학에 대한 관심도 함께 끌어올린다. 한국문학번역원 박경희 연구원은 “일본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일본문학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며 “이러한 부분이 이후 일본문학의 세계진출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일본문학의 탄탄한 입지는 오랜 노력에 의해 성취된 결과물이다. 일본은 이미 지난 1868년 메이지유신 때부터 번역원을 세우고 자국문학의 외국어번역사업을 장려해왔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세계 진출을 통해 문학작품 이전에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것에 주력했다. 자연히 시간이 흐르면서 외국인들이 일본문화를 이해하게 됐고, 이는 해외출판시장에 일본문학작품의 진출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일본은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주빈국으로 참여한 1990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2만 여종에 이르는 자국문학 번역본을 세계에 선보였다. 지난해 주빈국을 지낸 인도가 번역본 2000종을, 2005년의 주빈국이었던 한국이 1600종을 준비한 것을 감안하면 일본은 이미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한국문학의 세계진출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에서는 한국문학의 번역과 해외출판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이 시작된 1982년 이래 올해를 기준으로 그동안 27개 언어권에서 778건의 번역물이 출간됐다. 또한 번역원은 정기적으로 번역강좌와 작가초청 강연회 등을 개최했다. 번역원 교육운영팀의 전현정 씨는 “2002년에 개설한 번역강좌를 2005년부터는 언어권역별로 세분화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번역원은 지난달 중순, 지금까지의 번역강좌를 심화한 번역아카데미를 개설했다. 번역원 측은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한국문학 번역 실습과정 운영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번역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이번 사업의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사진으로는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등 유수한 학자들이 참여한다. 샘플번역을 포함한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친 치열한 경쟁 끝에 7개 언어권, 56명의 수강생들이 선발됐다. 이중에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의 외국인 29명도 함께 포함돼 있다. 이들은 24주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 전문번역가로 나서게 된다. 교육과정은 번역실습을 비롯한 다양한 강좌와 문학기행 등으로 구성돼 있다.

번역원 교육운영팀 직원 권세훈 씨는 “이제는 한국문학도 ‘해외독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할 때”라며 “앞으로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한국문학작품들이 많이 생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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