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즐기는 문화공연
“사랑을 이루고 나니 당연한 순서처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은 남루한 인상을 남길 뿐인가” 내 바로 앞 의자에 걸터앉은 여배우의 체념적인 목소리와 표정이 밀도 있게 전해져 온다. 목이 바짝 타는 느낌에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한 모금 목을 축였다.
특별한 무대도, 소품도, 조명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사이 가운데 공간이 무대가 되고 곳곳에 놓인 물건들이, 심지어 손님 앞에 놓인 찻잔도 소품이 된다. 여기에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가 더해지자 어느새 카페는 멋진 공연장이 된다.
다음달 28일(목)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홍대에 소재한 이리카페와 카페 팩토리에서는 ‘문학을 들려주다’라는 제목의 공연이 열린다. ‘문학을 들려주다’는 은희경, 정미경, 무라카미 하루키, 안톤 체호프 등 국내외 작가의 단편소설 7편과 시들을 매달 새로운 주제로 엮어 공연한다. 하지만 소설을 희곡화하지 않고 거의 원문에 가까운 작품들을 배우가 읽어주는 형식이다. 가령 소설 속에서 ‘문 따는 소리가 들렸다’는 문장을 배우가 문 열리는 소리를 듣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배우가 “문 따는 소리가 들렸다”고 대사를 읊는 것이다. 소설에서 속마음을 묘사한 부분도 대사처럼 읽힌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문효원씨는 “문학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살려내는 이번 공연은 색다른 경험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카페를 찾은 김은정(22·여)씨는 “책을 읽는다고 해서 지루할 줄 알았는데 똑같은 텍스트도 배우가 감정을 실어 전달하니 재밌었다”고 말했다. 또 “카페 곳곳의 물건을 활용하고 대사로 공간 이동을 대신하는 등의 설정이 신선했다”고 말했다.
이리카페와 카페 팩토리에서는 이번 연극 외에도 다채로운 문화 행사들이 진행돼 왔다.
이리카페는 화가인 이주용씨와 ‘허클베리핀’ ‘3호선 버터플라이’ 등의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했던 김상우씨가 운영한다. 여기에서는 미술작가들의 전시회와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또한 벽면을 한 가득 채운 600여권의 책들도 문화 공간으로서의 분위기를 돋운다.
카페 팩토리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시회, 세미나 뿐만 아니라 물물교환까지 이뤄지고 있다. 김우성 사장은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계속 벌어지는 공간으로서 카페를 꾸미고 싶다”고 앞으로의 운영 계획을 밝혔다.
△도심 속 시원한 얼음의 세계
푸른 조명과 얼음이 조화를 이룬 시원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테이블에서 머그잔까지 모두 얼음인 28평의 공간은 마치 동화 속 얼음 궁전에라도 온 느낌이 들게 한다. 홍대에 위치한 ‘아이스 바 서브제로’는 365일 내내 영하 10도의 실내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하 2층 출입구에 들어서면 에스키모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직원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이들은 카페 내의 한기에 맞설 방한복을 내밀며 벽에 손을 대지 말 것, 금연,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할 것 등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각종 보드카, 칵테일과 음료들은 얼음조각들과 멋들어지게 어울린다. 흔히 볼 수 없는 신기한 모습에 사람들은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손님은 대학생들이 주를 이루는데, 외국인들도 관광코스로 많이 찾는다. 이날 아이스 바 내부에서 사진을 찍던 홍콩 관광객들은 계속해서 “좋아요”라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직원 전지은(여·23세) 씨는 “한 번 찾아온 손님이 다시 찾아와 신기하다며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손님 모두가 카페 내부 바닥에 둘러앉아 게임도 한다”고 말했다.
‘아이스 바 서브제로’는 이처럼 바(bar)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테마파크 형식으로 운영된다. 아이스 바 대표 이승종 씨는 “유럽 곳곳의 아이스 바를 둘러보면서 색다르고 흥미로운 놀이공간을 국내에도 만들고 싶어졌다”며 “이 곳은 국내 최초의 얼음카페”라고 말했다.
너무 추워 오래 있기 힘들진 않을까. 얼음카페를 괴롭지 않게 즐길 수 있도록 이용 시 별도의 이용료 없이 방한복과 장갑을 대여하는데, 구두를 신은 여성을 위한 어그부츠도 준비돼있다. 물론 카메라를 미처 챙겨 오지 못한 손님을 위해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전송하는 서비스도 마련돼 있다.
‘아이스 바 서브제로’는 홍대입구역 5번 출구 놀이터 골목 왼쪽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다. 직원이 추천하는 방문 시간은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로,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사람이 많아 더 즐거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방한복 및 장갑 대여 △개인 얼음잔 △칵테일 등을 포함한 입장료는 15000원이며, 음료 리필 1잔 당 10000원이다. 치열한 일상에서 때론 시원함을 맛보고 싶다면, 얼음의 세계로 잠시 소풍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
△독서와 함께 행복한 발마사지를
카페에서 독서와 족욕을 동시에? 신촌에 위치한 ‘잔디와 소나무’에서는 가능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삶이 채워지는 공간’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는 전체적으로 밝은 크림색의 카페 전경과 어우러져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낮은 칸막이들 사이로 널따란 공간이 펼쳐진다. 카페 내부 여기저기를 돌아보다 보면 잔잔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음료를 주문하려 카운터로 발걸음을 옮기니, 메뉴판의 독특한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 △아침샘물(녹차 프라페) △행복한 동행(에스프레소) △햇살마루(카푸치노) 등 자연풍의 한글 이름부터 색다르다. 시인활동을 하고 있는 카페점장이 자연 친화적인 카페를 조성하고자 직접 지었다고 한다.
음료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자, 벽면에 나무로 짠 박스형 책장에 빼곡이 꽂혀 있는 책들이 눈에 띈다. 최신 베스트셀러 뿐 만 아니라 △Rest △Comfort △Inspiring △Recovery △Integration 등으로 분류된 각종 서적 100여권이 배치돼, 손님이라면 누구나 자유로이 가져다 볼 수 있다. 취향대로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카페 입구 반대편엔 족욕기 5대가 설치돼 있는데, 15분 동안 행복한 발 마사지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족욕기에는 푹신푹신한 의자와 음료나 책 등을 올려놓을 수 있는 테이블과 함께 로션과 수건, 비누가 마련돼 있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다보면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달콤한 졸음이 오기도 한다.
이날 친구와 함께 카페를 찾은 이윤정(여·21세) 씨는 “별도의 비용이나 준비 없이 독서와 족욕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잔디와 소나무’에서는 편지와 엽서를 판매한다. 이를 구입 후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으면 무료로 배송해준다. 또한 각 테이블마다 독서 스탠드와 인터넷이 가능한 랜 선을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포함한 60여 종의 책과 팬시용품도 판매해 읽었던 책이 마음에 든다면 바로 구입할 수 있다. 무료통화 시설이 마련돼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서비스.
한 손으로 다 꼽기 힘든 서비스들을 모두 누리는데 어떤 시간 제약도 없다. 홍대입구역 1번 출구에 위치한 ‘잔디와 소나무’에는 평일 하루 300명에서 350명 정도가 방문하며, 주말에는 400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하루를 마치고 느긋한 마음으로 커피와 함께 족욕과 독서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정지은 기자
서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