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는 각광받는 몇 사람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 그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일구어 낸 교향악과 같습니다” 정희성 시인이 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태어난 문인들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다뤄보는 ‘문인 탄생 100주년 기념문학제 심포지엄’은 뜻 깊은 문학제다. 올해로 7번째 맞이한 이번 심포지엄은 1907년에 태어난 김달진 · 김소운 · 신석정 등 7명의 문인들에 대해 다뤘다. 

“1907년에 태어나신 문인들의 삶을 회고해 문학적 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우리 문학사를 새로 쓰는 일이다”
올해로 7번째를 맞이한  ‘문인 탄생 100주년 기념문학제 심포지엄, 분화와 심화, 어둠속의 풍경들’이 지난 11일(금) 한국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 이날 심포지엄에는 대학생들과 문인들의 유가족이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사진=김진석 기자)

심포지엄은 지난 1907년 태어난 이효석 · 신석정 · 김소운 등 문인 7명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주제로 진행됐다. 진행은 염무웅 문학평론가 및 15명의 발제자들의 총론 발제를 시작으로 문인 7명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 및 토론으로 이뤄졌다.

▲ 김신정(사진에서 가장 오른쪽)문학평론가가 김달진의 시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사진=김진석 기자)

무위자연적 세계관을 가진 시인 - 김달진
김달진은 지난 1929년 등단했다. 불경 번역가로 잘 알려진 그는 ‘시인 부락’ 동인으로 활동하며 1980년대까지 시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수가 적어 지난 1997년에서야 그의 시 세계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경수 문학평론가는 “김달진의 시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것은 ‘고독’이라는 주체”라며 “그의 초기 작품은 자연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시가 주종을 이루지만 사실은 실존적 고독이 주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해방 후 불경 번역사업에 치중해 그의 시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무위자연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김선경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집에서 누락된 시들을 보면 모더니즘적 경향을 보인다”며 “시인 스스로 시집 속에서 자신의 무위자연적 시 세계를 기획하는 의도가 강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국가를 작사한 월북시인 - 박세영
해방 전 카프의 일원이었던 박세영은 해방 이후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1946년 상반기에 월북했다. 월북 후 그는 북한의 국가를 작사했고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월북 후에도 문단에서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카프 문학의 정통성이 북한 문학으로 계승됐음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라고 말한다.

한편 월북하기 이전에 창작한 박 시인의 작품을 보면 민족애와 자연친화적 부분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박수연 문학평론가는 “그것은 그가 자연을 향수로 표현하기 위해 활용하는 시적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연세계에서 현실세계, 또다시 자연세계로 - 신석정
신석정은 1930년대 우리 시의 현대화를 이끈 ‘시문학’ 동인 가운데 유일하게 오랜 기간 지속적인 활동을 한 시인이다. 그는 1924년 조선일보에 시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고형진(사범대 국어교육과)교수에 따르면 그가 일생동안 펴낸 총 다섯 권의 시집 속에서는 그의 미세한 시적 변화가 발견된다. 신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촛불>에는 그의 초기 작품의 특징인 목가적 관점이 집약돼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집 <슬픈 목가>에서는 억제됐던 시적 화자의 감정을 전과 달리 시 속에 표출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해방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지인 및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시가 자주 등장한다. 전후 민중들의 궁핍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경향도 보인다.

그러나 고 교수는 “전후 민중들의 현실을 투시하는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 후 네 번째 시집 <신의 서곡>에서는 자연세계를 지향하며 새로운 시적 언어와 문법을 구사했다. 김수이(경희대 교양학부)교수는 “신석정의 시를 노장사상의 관점에서 평가한 연구들은 시적 주체가 ‘나’인 그의 시 세계관을 간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연구 관점들은 신석정 시의 독자성과 당대의 사회 · 역사적 현실과의 관련성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친일본적’ 작가들 - 김소운 · 김문집
김소운과 김문집은 각각 보통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문학적 터전을 마련했다. 염 문학평론가는 그들이 배운 일본 고전문학과 당시 일본현대문학은 우리 문학에 일정 부분 자산이 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김문집의 대표저서 <비평문학>을 보면 우리보다 한발 앞서 서양문학을 수용한 일본문단의 동향을 통해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가늠해 보려는 시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염 문학평론가는 “김문집은 일본에 치중해 자아상실의 위험을 동반할 수 있었기에 문학 활동에 심각한 제약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김소운의 경우 일본과 한국을 거점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그는 일본의 근 · 현대시와 고전시가에 대한 풍부한 교양을 바탕으로 당시 한국 시가 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그는 번역 작품으로서의 예술적 완성도를 우선시하는 번역문 중심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다. 임용택(인하대 일어일문학과)교수는 “우리 문학사에서 김소운의 일본어 번역 저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미비한데 이는 김소운을 친일문학자로 보기 때문”이라며 “김소운은 자랑스런 조국의 문학을 지배국의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아래 번역했기 때문에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요절한 한국 국문학 연구의 개척자 - 김재철
김재철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한국 국문학 연구의 개척자다. 그의 저술활동 기간은 4년 밖에 되지 않으나 그 기간동안 생애 유일의 저서 <조선 연극사>를 저술해 한국 국문학 연구 체계를 확립했다. 그러나 일찍 세상을 떠났고 연구 대상이 극문학이라는 주변장르라는 점 때문에 세상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들어 국문학계에 희곡 연구가 활발해지며 지난 2000년 무렵 김재철의 호를 딴 ‘노정 문학상’이 제정되는 등 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연구에 따르면 김재철은 ‘조선어 문학회’에 가입해 문학, 연극, 언어학을 넘나들며 공부했다. 문학회 동기인 조윤제, 이희철 등이 자기 전공 분야에만 충실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조선 연극사>였다. 이상우(영남대 독어독문학과)교수는 “김재철의 연극사에서 두드러진 서술태도는 계급의식”이라며 “김재철은 경성제대 스승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적 학문풍토가 허구적임을 간파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공간적 특성을 중심으로 새롭게 음미한다 - 이효석
최근 들어 이효석 문학에 대한 조명이 새롭게 이뤄지고 있다. 방민호(서울대 국문학과)교수는 “이효석이 서정소설작가였다는 기존 학계의 통념은 해체단계”라며 “이효석 작품 속 장소의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방 교수에 따르면 이효석 소설에서는 도시, 거리, 집, 방 같은 공간 개념들이 수시로 전환돼 상반된 함축적 의미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도시와 유령>에서의 서울은 ‘생활의 무거운 짐을 절감하게 하는 곳’인 반면 <행진곡>에서 도시의 정거장은 ‘생활의 위대한 흐름을 보여주는 곳’으로도 묘사된다. 또한 이효석은 그 당시 폐쇄되고 고착된 사회 및 역사의 대조적 개념으로 자연을 ‘미래를 향해 개방된 가능성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방 교수는 “당시의 암울한 사회와 역사를 자연사 속에 통합해 재배치하고자 한 이효석의 자연주의는 상당히 독특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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