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퍼 ‘강병인’씨 인터뷰>

▲ 캘리그라피 작업소 '술통' 강병인 대표

한글이 미적인 감동을 전달하는 소재로 다시 태어났다. 책, 영화, 술병의 타이틀을 감각적인 글씨로 표현해내는 캘리그라퍼 강병인 씨. 그의 작업실 ‘술통’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전에는 광고대행사에서 손으로 광고 카피나 제품 로고를 썼다. 그러다 지난 2001년 일본에서 캘리그라피가 널리 쓰이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듬해에 지금의 ‘술통’을 차리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글씨를 돈 주고 산다는 개념이 희박해서 이걸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도 했다.

△캘리그라피가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는 5~6년 정도로 짧지만 영화, 드라마, 책의 타이틀 등에 꾸준히 쓰여 왔고 한국 영화의 성공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주목받았다. 무엇보다 캘리그라피가 획일적인 서체로 외면받던 한글의 글꼴을 다양화해 고유한 서체를 선보이면서 선호하는 것 같다. 또 붓의 터치가 주는 느낌이 우리 정서에도 잘 맞는다.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나
-책 타이틀을 의뢰받으면 책도 직접 읽어보고 기획자와 디자인 방향에 대해 의견 교환을 한 후 작업을 하는데 맘에 들게 쓰기가 쉽지 않다. 다른 글자들이 좋아도 한 글자가 이상해 다시 쓸 때도 많다. 컴퓨터 작업을 통해 짜깁기 할 수 있지만 글씨맛이 제대로 살지 않아서. 주류의 경우는 의뢰받을 때 신제품 술이 만들어지지 않아 직접 마셔 볼 수 없어 아쉽다.

아무튼 이렇게 쓴 글씨 중에 세 개 정도를 골라 보내면 디자이너가 최종적으로 하나를 선택하고 컴퓨터 작업을 거쳐 지금의 캘리그라피 형태로 만든다.


△대표작에 관해 듣고 싶다
-글씨로만 표지를 디자인한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책이 화제가 됐다. 행복해지기 위해 이기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라 얻기 어려운 ‘행복’을 나타내려고 약간 거친 느낌으로 글씨를 써봤다. ‘복’의 ㄱ자를 길게 늘어뜨려 행복으로 가는 길을 나타내고자 했다.

술의 경우엔 ‘대포’가 기억에 남는다. 1970~80년대에는 막걸리나 댓병에 든 소주를 대포라 했다. 이름이 대포인만큼 친구, 동료간의 추억을 되살리는 느낌이 필요한 술이었다. 그래서 ‘ㅐ’자는 두 사람이 마주 서 있는 것처럼, ‘ㅗ’는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둥글게 써서 서민적 느낌을 살려봤다.

△좋은 캘리그라피는 어떤 것을 갖춰야 하나
-캘리그라피는 서예와 디자인의 교집합이다. 하지만 손이나 붓으로 썼다고 전부 캘리그라피는 아니다. 글씨에 감성미와 조형미가 갖춰져야 한다. 서예를 배우면 조형적 요소를 갖춘 글씨를 쓸 수 있다. 붓도 비교적 자유롭게 운용해 뜻글자가 아닌 한글에도 뜻을 담아 표현할 수 있다. 조형미가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면 감성미는 다소 다른 영역이다.

김지하 선생의 스승인 장애순 서예가는 가장 좋은 글씨를 겨울철 군고구마 장수가 써붙인 ‘군고구마 사세요’라 했다.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간절함과 순수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의 감성이 작품 속에 충실히 반영돼야 좋은 작품이 된다. 작업할 때도 처음 쓴 글씨가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참이슬’은 100번 넘게 썼는데 처음에 쓴 글씨로 정해졌다. 글씨를 처음 쓸 때 순수한 감성이 제일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글에 대한 애정이 많아 보이는데
-한자 서예는 외국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것으로 여겨지는데 한글 서예는 한국만의 것으로 차별화될 수 있다. 한글은 조형적으로나 미학적으로 글꼴의 가치에서 다른 문자에 밀리지 않는데도 그 가치가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캘리그라피나 다양한 한글 폰트 개발 등을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이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다. 한글과 서예를 바탕으로 현대적 디자인을 더한 캘리그라피는 앞으로도 경쟁력이 있다. 또 캘리그라피와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에 한글이 사용됐으면 한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