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디지털화 돼가는 현대사회. 라디오는 그 중 아직도 아날로그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메체다. 이런 라디오도 빠른 매체의 변화와 '디지로그'의 열풍 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마니아층을 가진 라디오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난 24일(목) SBS <남궁연의 고릴라디오>를 찾아 생생한 라디오 제작현장의 모습을 담아봤다.

중학교 때부터 들어온 라디오… 책상위에 올려진 라디오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침대위에 누워서 눈을 감고 라디오를 들으면 DJ는 속삭인다. “오늘하루 잘 지냈나요?”, “방배동의 이경희씨는 자전거를 샀다고 하네요”…지금 그의 곁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상상으로만 라디오부스를 그려본다. DJ와 단둘이 대화하다보면 어느새 그는 인사를 건넨다.
“잘자요”

방송국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통유리들로 둘러싸인 라디오부스가 눈에 띈다. 라디오 주조정실, 위성DMB 방송실 등 라디오부스마다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통유리 안에서는 방송이 한창이다. 찰스, 황보, 그리고 웃으며 맞이하는 진행자 남궁연 씨까지…

방송시작 30분 전. 다음날 방송될 녹음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남궁연 씨를 찾아 라디오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DJ허락도 안 받고 놀러왔어? 고대생들은 연락도 없이 와요~ 너네 원래 그렇지?”하며 농담을 건네는 남 씨. 그는 “DJ는 복덕방주인이지. 아줌마가 길을 물어보면 알려주는 것처럼 게시판에 청취자가 맛집을 물어보면 다른 청취자들이 댓글을 올리고, 그걸 전달하는게 DJ의 역할이라고 생각해”라며 DJ를 소개했다.

▲ 라디오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스텝들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그때그때 DJ에게 전달해준다(사진=정회은 기자)

방송시작 5초 전. On-air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방송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송이 흘러나온다. “Go to the real radio! 안녕하세요, 남궁연입니다” 시작 전부터 인터넷 게시판을 한껏 달아오르게 만든 1부의 게스트는 아이비. 청취자들을 향해 베트맨 흉내를 내는 그녀의 모습은 ‘고릴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청취자들을 찾아간다.

‘고릴라’는 일명 ‘보는라디오’로 인터넷을 통해 라디오방송을 실시간 영상중계해주는 서비스다. 박성원 담당 PD는 “고릴라는 듣는 것에만 만족하지 못하는 청취자들을 위해 생겨났다”고 말했다. 부스 안에는 DJ와 게스트 말고 여자 한 명이 키보드 앞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학생으로, 게스트와 대화하는 동안 분위기에 맞춰 즉흥적인 배경음악을 연주해준다.

한편, 부스 밖에서는 작가들이 쉴새없이 올라오는 댓글들 중 재미있는 질문을 컴퓨터에 옮겨 적고 있다. 이렇게 적은 글들은 부스 안의 컴퓨터와 연결돼 DJ와 게스트가 볼 수 있다. 신혜녀 작가는 “예전 작가들은 반나절을 산더미 같은 편지속에서 사연을 고르느라 고생했지만, 요즘은 게시판을 사용해 훨씬 편해요”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청취자의 참여로 이뤄지기 때문에 게시판은 매우 소중하고 유용한 존재다.

2부의 메인프로는 ‘라디오 인생극장 오디션’이다. 청취자들의 고민을 드라마화 해 진행하는 라디오 인생극장은 일반 청취자가 오디션을 통해 출연한다.

이 날의 첫 번째 도전자는 인기 플래쉬동영상 ‘5인용’에서 신창후 역할을 맡은 신창후 씨였다. 그는 김민선 씨와의 상황극에서 선생님을 좋아하는 어린제자의 역할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플래쉬에서 보여줬던 넘치는 끼를 보여줬다. 박 PD는 “고지욕告知慾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과 구지욕求知欲 (알고싶어하는 마음)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인터넷이 요즘 라디오방송에 접목되고 있다”며 “라디오 인생극장과 같은 프로는 청취자의 고지욕을 채워 주기위해 신설됐다”고 말했다.

또한 고민상담코너에선 남자친구가 못생겼다는 고민부터 자동차를 너무 좋아해 그 안에서 잠까지 잔다는 고민까지…청취자들의 특이한 고민들은 라디오부스 밖에 있는 스텝에게까지 웃음을 주며 방송을 따뜻하게 했다.

한편, 청취자가 즉석에서 신청하는 음악을 틀어주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LP판이 튀어서 방송사고를 내거나 청취자의 신청곡을 찾아 중앙CD실까지 뛰어다니던 일은 이제 먼 옛날얘기다. 요즘에는 음악을 중앙컴퓨터에 저장하고 그것을 다운받아 틀어준다. 노래는 대부분 전문 엔지니어가 틀어주지만, 가수출신 또는 전문적 지식이 있는 DJ라면 본인이 직접 틀기도 한다. 남궁연 씨는 부스 안에 기계를 따로 놓고 직접 음악을 틀어준다. 그는 “그래도 음악은 CD로 들어야 제맛이지”라며 CD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방송이 끝나도록 청취자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올라왔다. 한 청취자는 파리에서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듣고 있다며 글을 올리기도 했다.

12시를 몇 초 앞두고 남궁연 씨는 청취자들과 인사를 한다. 이윽고 on-air의 불빛이 꺼진다. 부스 안에는 다음 프로그램의 DJ가 자리 잡고, 라디오는 새벽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한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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