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이 유명 예술가의 죽음과 그들 작품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밝히고 있다. ‘예술 법의학’이 바로 그것이다.

고흐가 <해바라기>에 표현한 찬란한 노란빛을 비롯해 고흐의 그림엔 유난히 노란색이 많다. 이는 쑥을 주재료로 만든 ‘압생트’라는 술을 즐겨마신 고흐가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黃視症)’을 앓았기 때문이다. 도수가 높은 압생트에 포함된 테레벤(Terebene)이 시신경을 훼손시킨 것이다. 황시증이 아니었다면 고흐의 <해바라기>가 뽐내는 노란빛은 그저 평범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예술 법의학을 만들어낸 사람은 국내 법의학계의 원로이자 본교 의과대 명예교수인 문국진 박사다. 문 박사는 국내 최초로 본교에 법의학 교실을 개설했다. 지난 1990년 교수생활 은퇴 후, 평소 관심이 많았던 예술분야와 법의학의 접목을 시도하며 대중이 법의학에 쉽게 다가서도록 앞장서고 있다.

문 박사는 “보통사람들은 흉내낼 수 없는 집착이 예술을 만드는데, 이 집착이 ‘창조병’이라는 병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문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창조병은 예술가의 사소한 병을 큰병으로 만드는데 관련이 있다. 체코출신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잇몸 농양이 발전한 폐혈증이 이른 나이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 역히 '창조병'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인한 화풍의 변화

피에르 오그스트 르느와르 (Pierre-Auguste Renoir)는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의 대표적 화가다. 그의 1887년작 <목욕하는 여인들>에선 아름답고 풍만한 여인들의 몸과 뽀얗고 매끄러운 살결 등이 세밀하고 뛰어난 표현력으로 나타났다.

▲<목욕하는 여인들> 연작. 왼쪽이 1897년 作 오른쪽이 1919년 作이다.


반면 1919년작 <목욕하는 여인들>은 첫 번째와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붓 터치 방법이나 빛깔 등에서 변화가 많다. 미술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이탈리아를 여행한 르느와르가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예술을 접하고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의학적 관점에서 문 박사는 손가락의 변형으로 인한 부자유스러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1880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 오른쪽 팔에 골절상을 입은 후 1888년 손과 발에 가벼운 장애가 생겼고 1894년부터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인한 통증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1919년작을 그릴 때는 이미 손가락 관절의 변형이 심해 붓을 쥘 수 없는 지경이었다. 말년의 르느와르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오리의 목처럼 휜다는 오리 목(Duck neck) 변형이 일어났고 왼손은 손등과 손가락이 이어지는 부분인 중수지관절이 굴곡되고 짧아지는 크루켄베르크(Krukenberg) 변형이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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