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유기적인 공간이다. 언제나 낡은 건물이 철거되기도 하고 새로운 건물이 증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종종 비어있는 공간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임대를 기다리는 공간이거나 철거되기 직전의 공간이거나, 혹은 도시의 빈터일수도 있다. 도시의 ‘빈 공간’이 소유주에 의해 어떠한 목적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지 않은 채 비어진 상태로 있을 경우를 주목해 보자. 우리가 그 공간을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즉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살짝 넘어서게 되면 그 공간의 사용방법은 우리의 상상력에 따라 무한대로 확장된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좀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물음을 동기로 한다. 다시 말하면 스쾃(Squat)이란 소유권의 개념을 넘어서 도시공간의 사용권을 주장하며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는 것을 말한다. 

호주의 목동들이 자신들의 초지가 아닌 곳으로 양떼를 몰고 가서 풀을 먹이던 행위로부터 유래한 스쾃이란 단어는, 서구의 산업혁명 시기에 도시빈민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빈공간을 점유한다는 의미로 전환돼 사회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후 스쾃은 프랑스 68혁명과 1980년대를 지나면서 ‘다르게 사는 것이 가능한 사회’의 실천공간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실천은 자율주의 운동과 빠른 속도로 접촉하면서 다양한 △사회운동 △문화운동 △생태운동 등을 탄생시켰다.

한국의 경우 2004년 ‘오아시스 프로젝트(OASIS Project)’라는 행동주의 예술실천활동을 통해 그 개념이 알려졌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막과도 같은 답답한 도시에 오아시스를 만들자’를 기본 모토로 새로운 형태의 삶과 예술이 실험되는 공간을 창출하고자 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다수의 주체들은 현재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단지에서 새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인간관계마저도 상품화돼버리는 후기 자본주의의 도시적 삶의 모습은 ‘인간’을 위한 시스템이라기보다 인간을 ‘상품’과 ‘자본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지 않는 삶의 양식을 재창안하고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며 도시를 ‘사람이 살 만한 공간’으로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러한 실천을 영등포구 문래동 철재상가 단지에 자리한 예술가·기획자들이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재개발이 예정돼있어 빈 사무실이 많았던 이곳은 2007년 이후 속속 모여든 이들에 의해서 새로운 성격의 지역으로 거듭났다. 화이트큐브 전시장이나 정형화된 무대공연 양식을 떨쳐 버리는 예술발표의 현장이 됐고, 상호부조적인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문래철공단지에서 문래예술공단으로, 문래동은 고정화된 예술의 방식과 삶의 양식을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실천과 실험의 무대로 전환되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자. 빈 공간 혹은 빈 터가 보이는가? 그렇다면 그 공간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같이 놀 친구를 만들고 그 친구와 같이 그곳에서 놀아 보자. 그것만으로도 이미 자본주의의 철옹성과도 같은 소유 개념을 넘어서게 된 것이며, 놀이를 통해 삶의 새로운 모습을 창안하는 것이다. 불온한 상상력이 행동으로 전환되는 그 시점에서 바로 새로운 세계는 시작된다.

글/ 김  강
project space LAb39 디렉터, 미술가, 미학연구자, 『삶과 예술의 실험실_squat』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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