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자동차의 부품들이 로봇으로, 다 쓴 후라이팬이 거북이로, 싱크대 병첩이 강아지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처럼 폐기물을 이용해 작품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창조 활동을 정크 아트(Junk art)라고 한다. 지난 13일(일), 정크 아트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경수 씨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양평을 찾았다.

한산한 양평읍의 도로를 지나 정경수 씨의 개인 작업실에 도착했다. 푸른 나무들로 우거진 작업실 앞 마당엔 △로봇 △거북이 △삐에로 △여우 등 폐기물로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정크 아트 작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리고 작업장 주변엔 이 곳이 정크 아트 작업실임을 보여주듯 각종 고물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정 씨가 정크 아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6년 전 서울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 경기도로 작업장을 이전하면서부터다. 그 당시 작업장 옆에 카센터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버려진 부품 중 너무 쓸 만한 것들이 많았단다. “카센터에서 차를 고치고 버려진 자동차 부품들이 아까웠어요. 뭔가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것들을 가져다 작품을 만들어 봤죠.”

지금도 그의 작업장 근처엔 고물상들이 위치해 있다. 그는 직접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작품에 쓸 만한 폐기물을 찾는다. 남들에겐 단지 버려진 폐기물도 그에겐 작품의 재료다. 심지어 길에 버려진 돼지머리 뼈를 주워와 작품을 만들기도 했단다. “작업 자체보다 이렇게 알맞은 부품을 수집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버려진 폐기물들을 보는 순간 이건 어느 부분에 쓸 수 있겠다, 뭘 만들 수 있겠다는 게 바로 떠오르기도 해요”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폐기물 부품들과 각종 용구들이 보는 이를 놀라게 했다. 작업장 내부에 사람이 왔다갔다 못할 정도여서 올해 봄에 넓혔다고 한다. 필요한 부품을 찾아 폐기물을 열어보는 일부터 폐기물을 자르고, 조립하고, 용접하는 것 모두 정 씨의 몫이다. 정경수 씨가 내민 손등엔 상처가 유난히 많았다. “직접 도구를 이용해서 작업하다 보니 손에 상처가 많이 나요. 하지만 내 작품이라면 남이 아닌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의미가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정경수 씨는 정크 아트가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재료를 이용해 만드는 작품만큼 제대로, 잘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한다. “예전에 조형 전시회에 참여했을 때 순수조각하는 사람들이 정크 아트를 별로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길래 우스개 소리로 이렇게 말했죠. 너네는 멀쩡한 재료가지고 쓰레기를 양산하지만 나는 쓰레기로 작품 만든다고요(웃음)” 

최근 국내에서 정크 아트는 환경과 자원의 소중함을 시사하는 예술 활동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경수 씨의 정크 아트 작품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자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정크 아트 체험전도 열렸다. 하지만 정 씨에겐 환경적인 의미보단 작품을 만드는 그 자체가 더 큰 즐거움이다. “정크 아트엔 비슷한 작품이 없어요. 작품마다 재료도 하나 같이 다르니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 만들어지죠. 정크 아트를 만드는 일은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이기도 하고 내게 그 자체만으로 즐거움을 주는 일인 것 같아요”

정경수 씨의 꿈은 넓은 부지에 정크 아트 미술관을 세우는 것이다. 미술관 건물은 고철과 재활용 폐품을 이용해 만들 생각이라고 한다. “지금 작업장도 고물을 재활용 한 거예요. 처음엔 주변에 나무 한 그루 없고 유리도 없는 작업장이었지만 일일히 직접 수리하고 고물을 사다붙여 지금의 모습이 됐죠” 많은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물건도 이렇게 작품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정크 아트를 하는 이유라고 말하는 정경수 씨. 그는 오늘도 버려진 폐기물에 제2의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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